[Born Global/창업부터 세계시장 노리는 슈퍼 벤처]<4>레이저 의료기기업체 루트로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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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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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로닉 본사 연구원들이 자사 레이저 의료기기의 부품을 점검하고 있다. 이 회사는 창사 당시부터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겨냥한 차별화된 제품으로 레이저 의료기기 시장에서 아시아 2위, 세계 9위에 올랐다. 루트로닉 제공
루트로닉 본사 연구원들이 자사 레이저 의료기기의 부품을 점검하고 있다. 이 회사는 창사 당시부터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겨냥한 차별화된 제품으로 레이저 의료기기 시장에서 아시아 2위, 세계 9위에 올랐다. 루트로닉 제공
황해령 대표 루트로닉 제공
황해령 대표 루트로닉 제공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경기 고양시의 루트로닉 본사 연구소. 큰 회의실에서 레이저 의료기기 부품을 늘어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는 연구원들 너머로 ‘강의 중’이라는 문구가 내걸린 작은 방이 눈에 들어왔다. 살짝 열어보니 10여 명이 진지하게 영어회화 수업을 듣고 있었다.

평일 오전에 강의실에 앉아 있는 직원들은 영업이나 마케팅 부서 소속이 아닌 순수 개발인력이었다.

의아하다는 표정을 읽은 이 회사 황해령 대표는 “미국 현지에 세운 연구소와 동시에 제품개발을 진행하려면 엔지니어들도 영어에 능숙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임직원이 180명 정도밖에 안 되는데 벌써 미국 현지 연구소까지? 황 대표는 “우리 회사 제품 10개 가운데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것이 7개”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 “싸구려는 안 만든다”


황 대표는 미국 예일대에서 경제학과 전자공학을 동시에 전공했다. 그 덕분에 초창기 다른 회사의 의료기기를 직접 분해해봤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관련 논문을 찾아 읽을 정도의 수준이 된다. 또 대학 졸업 후 3년간 미국 의료기기 업체에서 일한 덕에 다른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확보하기 힘든 글로벌 인맥도 쌓았다.

하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창업과 동시에 해외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는 뚜렷한 목표와 전략이 없었다면 루트로닉은 그저 그런 업체에 머물렀을지 모른다. 그의 전략은 단순했다. 세계 레이저 의료기기 시장의 40%를 차지하는 미국에 진출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과 처음부터 ‘싸구려’가 아닌 차별화된 제품으로 승부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기술개발에 사활을 걸었다.

루트로닉과 비슷한 시기에 레이저 의료기기 시장에 진입한 한 국내 중소기업은 저가형 제품에 중점을 뒀다. 10여 년 뒤인 현재 루트로닉은 그 기업보다 20배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 기술 찾아 해외로


황 대표는 1997년 피부과 성형외과 등에서 쓰는 고가(高價)의 의료장비를 만드는 레이저 의료기기 회사인 루트로닉을 창업했다. 외환위기 파고로 돈 구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미국에서 쌓은 경력과 수입업체를 운영하며 터득한 노하우로 ‘적당한’ 제품을 내놓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미국시장에서 먹힐 제품을 내놓겠다는 황 대표의 원칙은 확고했다. 1999년까지 2년 넘게 연구개발(R&D)에만 온 힘을 기울였다.

자본금은 금세 바닥났다. 여기저기 대출받은 돈도 언 발에 오줌 누기였다. 결국 아파트를 팔아 회사에 몽땅 털어넣었다. 그래도 직원들 월급도 제대로 챙겨줄 수 없었다. 그는 “루트로닉을 운영하면서 그때만큼 힘든 적이 없었지만 제품의 수준만은 절대 양보할 수 없었고, 이것만 해결되면 반드시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때만 해도 국내에는 마땅한 의료기기 제조회사가 없어 병원들은 거의 수입에 의존했다. 따라서 황 대표가 기술을 배울 수 있는 방법도 애초부터 한국에는 없었다. 황 대표는 한 달의 절반을 직원들과 함께 의료기기 관련 논문을 쓴 의사나 엔지니어들을 찾아 해외를 떠돌았다. 이런 노력 끝에 창사 3년 만인 2000년 루트로닉은 FDA 승인을 받은 데 이어 2001년 대만으로의 첫 수출에 성공했다.

○ 플러스알파를 찾아서


“이 제품 하나로 피부 색소치료 외에 피부 재생수술까지 할 수 있습니다.” 루트로닉은 자사(自社)의 레이저 의료기기를 팔 때 의사들에게 이렇게 접근했다. 의료기기의 가격은 기존 미국 제품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의사들은 비슷한 값에 여러 기능을 갖춘 루트로닉의 의료기기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황 대표는 “흔히 중소기업이 해외에 진출할 때 가격에만 치우쳐 싼 것을 만드는 데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세계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차별화된 기능으로 공략해야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가격경쟁이 아니라 고(高)기능, 다(多)기능으로 승부하겠다는 루트로닉의 전략은 해외 의료진 초청교육으로 이어진다. 루트로닉 관계자는 “정기적으로 의료기기 수출국의 의사들을 본사로 초청해 사용법 등을 가르치고 있고, 교육을 받은 의사들이 이를 바탕으로 논문을 작성해 지금까지 루트로닉 제품이 인용된 논문이 130여 편에 이른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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