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거리패션 올리니 대중과 通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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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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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1 여파로 실직후 ‘전업주부’됐던 이 남자… 패션 파워블로거 스콧 슈만

스콧 슈만 씨가 9일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이 쓴 책 ‘사토리얼리스트’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스콧 슈만 씨가 9일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이 쓴 책 ‘사토리얼리스트’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스콧 슈만 씨는 텅 빈 사무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2002년의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2001년 9·11테러는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만 무너뜨린 게 아니었다. 당시 33세의 슈만 씨는 테러 이후 뉴욕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더는 재정적으로 못 버티겠다’고 판단해 3년째 운영하던 패션 쇼룸의 문을 닫았다. 뉴욕 버그도프굿맨 백화점 등에서 10여 년을 패션 마케터로 일하다 젊은 디자이너를 키워보려고 이 쇼룸을 열었기에 상실감은 깊었다.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그는 이때부터 2년여 동안 집에서 살림하며 어린 두 딸을 키웠다. 이 힘들었던 인생의 시기가 훗날 영화로운 성공의 밑거름이 되리라고는 아마 하늘의 신만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딸들의 사진을 찍어주면서 자신의 내부에 예술적 재능이 꿈틀거린다는 것을, 자신이 사진과 패션을 끔찍이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캐논 EOS 5D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가 멋스러운 뉴요커들을 찍고 블로그에 사진을 올렸다. 2005년 패션 전문 블로그 ‘사토리얼리스트’(thesartorialist.com·사토리얼리스트는 ‘개성을 잘 표현하는 신사’란 뜻)의 시작이었다. 그가 만든 이 사이트는 여러 매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 블로그’로 꼽히고 있다. 하루 평균 방문자는 10만 명.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2007년 그를 ‘디자인 부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최근 방한한 그와 9일 서울 중구 명동 빈폴 플래그십스토어에서 마주앉았다. 그의 인생을 바꾸게 한 9·11테러가 발생한 지도 10년이 지나 그는 어느덧 43세가 됐다.

―당신의 사진 속 인물들은 멋집니다. 누구를 찍는 겁니까.

“제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유명 패션 디자이너 조르조 아르마니 씨도 찍지만 노동의 고귀함이 느껴지는 장화를 신은 공사장 인부도 찍습니다. 전 패션이 아니라 패션을 자신감 있게 소화하는 ‘사람’을 찍는 겁니다.”

―왜 거리로 나가 사진을 찍습니까.

“패션 일을 하면서 패션산업과 대중 간에 존재하는 간극이 아쉬웠습니다. 지금 밖은 추운 겨울인데 백화점엔 봄옷이 걸려 있잖아요. 실시간 패션을 대중과 소통하고 싶었습니다.”

―블로그에 유명 의류회사 ‘아메리칸 어패럴’의 광고가 있던데 수익모델은 무엇입니까.

“블로그 광고수익은 제 여러 수입원(패션브랜드와 협업 등) 가운데 하나에 불과합니다. 2009년 사진 500여 장을 골라 펴낸 책 ‘사토리얼리스트’의 인세도 짭짤합니다. 정보를 올리는 대신 기업에 돈을 요구하는 블로거가 많아져 안타깝습니다. 제 경우엔 돈에 연연하지 않고 중립성과 순수성을 지켰더니 오히려 돈이 따라왔는데 말이죠.”

슈만 씨가 한국에 온 건 제일모직과 ‘트렌치코트 in 서울’이라는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제일모직이 올해 트렌치코트를 주력 아이템으로 삼고 그의 ‘패션 파워’와 손잡은 것이다. 그는 8일 ‘빈폴’ 트렌치코트를 잘 차려입은 한국인 10명을 거리에서 촬영했다.

스콧 슈만 씨(왼쪽)가 8일 서울 강남 거리에서 ‘빈폴’ 트렌치코트를 입은 한국인 여성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제공 제일모직
스콧 슈만 씨(왼쪽)가 8일 서울 강남 거리에서 ‘빈폴’ 트렌치코트를 입은 한국인 여성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제공 제일모직
―소셜네트워킹 시대에 패션이 나아갈 길은….

“결국엔 소통이겠죠. 예전엔 블로그를 무시하던 패션 브랜드들의 태도도 180도 바뀌었어요. ‘비방이어도 좋다, 많은 얘기를 소비자들과 나누고 싶다’로….”

그에게 카메라를 건네주고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하자 햇볕의 질감이 부드럽게 나와야 한다며 살짝 옆으로 이동해 앉을 것을 권했다. 그는 역시 사토리얼리스트였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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