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건설이 올해 6월 완공한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의 모습. 이 호텔은 지면에서 최고 52도까지 기울어져 있어 시공이 쉽지 않아 “쌍용건설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 제공 쌍용건설
6월 22일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마리나 베이 샌즈’ 복합리조트 개장을 하루 앞두고 이 호텔을 방문했다. 그는 호텔을 꼼꼼히 살펴본 뒤 싱가포르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 잡을 이 건물에 상당한 만족감을 표시하며 “쌍용건설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공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6월 열린 ‘한-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CEO 정상회의’ 초청 만찬에서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도 자국에서 활약하는 외국 기업들 가운데 쌍용건설을 언급하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택시를 타고 쌍용건설을 얘기하면 모르는 운전사가 없을 정도다. 싱가포르 사람들은 ‘대한민국’ 하면 ‘삼성’이나 ‘현대’보다도 ‘쌍용건설’을 먼저 떠올린다. 쌍용건설은 국내 시공능력평가 순위는 15위지만 해외에서는 그 이상의 가치와 인지도를 갖고 있다. 이는 뛰어난 건축 기술을 바탕으로 고급 랜드마크 건축물을 많이 지었기 때문이다.
○ 21세기 건축의 기적 세워
올해 쌍용건설의 최대 화두는 ‘21세기 건축의 기적’으로 불리는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완공이었다. 싱가포르의 관문을 상징하도록 각 동이 입(入)자형 구조로 설계됐으며 3개 동 총 2561개의 객실을 갖추고 있다.
이 호텔은 지면에서 최고 52도 기울어져 올라가는 동쪽 건물을 70m 높이에서 서쪽 건물과 연결한 후 55층까지 건설하도록 설계됐다. 이 때문에 까다로운 경사 구조물 공법 제시가 수주의 관건이었다. 2007년 전 세계 14개 건설사가 입찰에 참여했지만 최종 초청된 곳은 쌍용건설을 포함해 일본, 프랑스, 홍콩의 건설사 4곳에 불과했다. 이 중 두 곳은 시공 방법을 찾지 못해 중도 포기했으며 나머지 1개사도 공기를 단축하는 공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하지만 쌍용건설은 교량 건설에 쓰이는 특수 공법까지 적용해 설계 원안대로 공사를 수행하면서도 적정 공사기간 약 48개월을 27개월로 단축할 수 있는 공법을 제시함에 따라 최저금액을 제시하지 않았음에도 시공사로 선정됐다. 공사금액은 약 9000억 원이었으며 해외 건축 프로젝트로서는 최대 규모였다.
○ 남들이 가지 않는 곳에 길이 있다
쌍용건설은 1977년 창립 이후 미국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과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중동 등 19개국에서 공사 132건, 수주액 약 78억 달러를 기록한 전통적인 해외 건설의 명가(名家)다. 해외사업이 전체 사업의 약 40%를 차지하며 호텔과 병원 사업을 많이 해 약 1만3000실의 최고급 호텔과 8000병상에 달하는 병원 시공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또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일본, 괌, 두바이, 발리 등 세계적인 관광 명소에서 세계 최고급 호텔의 상징인 하이엇 계열 호텔과 인터콘티넨털 호텔을 시공했고, 지난해 싱가포르에 처음 진출한 최고급 호텔인 W 호텔 공사를 수주하는 등 다수의 최고급 체인 호텔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다른 국내 건설사들이 플랜트, 토목 사업에 강점이 있다면 쌍용건설은 건축사업에 강점이 있다. 한국신용평가 노익호 건설팀장은 “국내 건설사들은 소수 메이저 건설사를 제외하고 할 줄 아는 게 없기 때문에 주택 사업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며 “쌍용건설은 싱가포르 등 동남아 시장에 일찍 진출해서 메이저 건설사 이상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주택사업에서도 쌍용건설은 타운하우스인 오보에 힐스, 골프빌리지인 투스카니 힐스 등 고급 주택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다. 아파트, 오피스텔에 치중하는 대부분의 건설사와는 다른 모습이다. 쌍용건설 관계자는 “호텔 등 건축기술 면에서 강점이 있다 보니 시행사에서도 새로운 디자인이나 최근 트렌드에 맞는 주택을 우리에게 지어달라고 요청한다”고 말했다. ▼ 19개국에서 132건 공사 수주… 국내선 타운하우스 선점 ▼
○ 2015년 국내 7위 탈환 목표
쌍용그룹 소속이던 쌍용건설은 외환위기 이후 그룹이 해체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창립 이듬해부터 쌍용건설은 중동 특수 속에서 해외로 진출해 요르단을 시작으로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에서 많은
해외공사를 수주했다. 싱가포르 래플스 시티를 지을 때는 ‘고강도 콘크리트 공법’과 ‘유압식 콘크리트 펌핑기술’ 등을 통해 불과
3, 4일 만에 1개 층씩을 올리면서 공사기간을 줄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쌍용건설이 선보인 건축기술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 초고층 건물을 시공하는 핵심기술이 되고 있다. 이런 신화를 바탕으로 쌍용은 국내에서도 대형 국책 사업들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부산항 컨테이너부두를 비롯해 국내 건설사 중 가장 많은 지하철을 시공했고 쌍용건설은 창립 10여년 만에 도급순위 7위에
올라서며 대형건설사로서의 명성을 쌓았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급속한 경기침체로 국내외 미수금이 쌓이고
쌍용자동차의 부채까지 떠안아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결국 1999년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약 2300명의 임직원을 700명 선으로
감축하는 등 고강도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5년여 만에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쌍용건설은 2007년 창립 30주년을
맞아 2015년까지 △국내 건설 톱7 재진입 △수주 9조 원 △매출 7조 원 △영업이익률 7% 달성을 목표로 하는 ‘7977’
전략을 수립하고 목표를 향해 뛰고 있다. 해외사업 실적에 힘입어 이 회사의 매출은 2005년 1조1633억 원에서 지난해
1조9690억 원으로 상승했다.
쌍용건설은 앞으로도 리비아, 카타르, 중동, 아프리카 등지에 적극 진출하면서
해외사업에 주력할 계획이다.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은 “남들이 하고 싶어도 못하는 분야에 우리 회사의 강점이 있다”며 “최근에는
단순히 높게 짓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디자인의 고급 건축물이 발주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우리처럼 기술력과
시공 실적을 모두 갖춘 회사는 많지 않기 때문에 경쟁력이 충분히 있다”고 낙관했다. ■ 싱가포르서 건설신화 쓴 김석준 회장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57·사진)은 전문경영인이다. 쌍용그룹 창업주 고 김성곤 회장의 2남이지만 외환위기 이후 그룹 해체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등을 겪으면서 회사 지분은 1.44%만 갖고 있다.
오너 경영인은 아니지만 그가 전문경영인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이유는 직원들의 신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쌍용건설 관계자는 “회장이 직접 뛰면서 자신의 인적네트워크를 활용해 해외 수주에서 큰 기여를 한다”며 “직원들도 실질적인 오너라고 여긴다”고 말했다.
특히 김 회장의 싱가포르 인맥은 국내 최고로 알려져 있다. 김 회장은 10년 이상 한-싱가포르 경제협력위원장을 맡으며 평소 ‘형(brother)’이라고 부를 정도로 가까이 지내는 싱가포르 최대 민간 기업인 홍릉그룹 오너 <릉벵 회장, 싱가포르 관광청장을 지낸 바 있는 윙타이그룹의 에드먼드 쳉 회장과 각별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적인 건설사들과의 경쟁에서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을 수주하는 과정에서도 김 회장의 발로 뛰는 세일즈 경영이 빛을 발했다. 김 회장은 2006년 쳉 회장의 소개로 프로젝트 핵심 의사결정권자와 면담을 했고 이를 계기로 결국 입찰 초청을 받게 됐다. 이후 김 회장은 수차례 현지를 방문하면서 수주 전 과정을 직접 진두지휘했다.
이 같은 김 회장의 활약으로 쌍용건설은 1980년 싱가포르에 진출한 이래 지금까지 총 36건, 5조1000억 원 규모의 공사를 수주했으며 현재도 총 3건(1조5000억 원 규모)의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김 회장은 기존 시장에서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신시장 개척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리비아, 쿠웨이트, 카타르 등을 연이어 방문하는 등 수주 영업의 최전선에서 직접 발로 뛰고 있다. 김 회장은 “사람들은 ‘세계 최고의 차’라고 하면 주저 없이 BMW나 벤츠를 꼽는다. 이 회사들은 자동차 업계에서 매출 1위의 회사는 아니지만 이미 명품의 반열에 들어있기 때문에 매출 규모보다는 오로지 품질을 통해 명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며 “쌍용건설도 외형이 가장 큰 회사는 아니더라도 명품을 만드는 건설사로서 세계 속에서 명성을 이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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