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금융 후계구도 ‘시계제로’

  • 동아일보

중징계 통보 받은 라응찬 회장 조기퇴진 가능성

금융감독원이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에게 중징계 방침을 전격 통보하면서 신한금융지주가 격랑에 휩싸이게 됐다. 라 회장은 신한금융 사태가 불거진 뒤 최소한 후계체제를 정비한 뒤에 물러나겠다는 뜻을 여러 경로로 내비쳤지만 이번 중징계 방침 통보로 조기 퇴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그럴 시간적 여유를 갖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불거진 신한금융 사태로 ‘포스트 라응찬’의 대표주자로 꼽혀 왔던 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사장과 이백순 신한은행장마저 큰 타격을 입게 되면서 신한금융의 후계구도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시계 제로 상태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신한은행에 2, 3주간의 소명 기회를 준 뒤 11월 4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라 회장 등 신한금융 전·현직 임직원의 징계 수위를 결정할 계획이다. 징계 대상에는 신 사장을 포함해 라 회장의 차명계좌 개설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전·현직 임직원이 대거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 머물던 라 회장은 27일까지이던 출장 일정을 단축하고 8일 급히 귀국해 시내 모처에서 대책을 논의했다.

하지만 라 회장과 신한금융의 소명에도 불구하고 금감원의 중징계 방침이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라 회장이 금융실명제법 위반에 개입한 물증이 확실하다”며 중징계 방침이 바뀔 가능성을 일축했다.

금융권은 라 회장에 대한 금감원의 중징계 방침은 사실상 ‘시한부 선고’나 마찬가지라고 보고 있다. 중징계가 확정되더라도 라 회장은 임기가 만료되는 2013년 3월까지 회장직을 유지할 수 있지만 전례를 볼 때 회장직을 정상적으로 수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라 회장이 조기 사퇴할 경우 신한금융은 이사회를 중심으로 비상경영체제를 유지하며 후계구도 정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30여 년간 경영권의 내부 승계를 이어온 신한은행의 전통에 따라 내부에서 차기 회장을 발탁하는 방안이 유력하지만 공모 절차를 통해 외부 수혈에 나설 가능성도 적지 않다.

신한금융 내부 인사로는 이인호 신한은행 고문(전 신한금융 사장)과 류시열 신한금융 비상근이사(전 제일은행장)가 유력하게 거론되는 가운데 홍성균 전 신한카드 사장, 고영선 전 신한생명 사장 등도 후보군에 오르내리고 있다. 자문료 횡령 의혹에 각각 연루된 신 사장과 이 행장은 일찌감치 차기 회장 후보에서 멀어졌다는 평가다.

공모 절차를 거쳐 외부 수혈에 나설 경우 관료 출신 인사들의 하마평도 벌써부터 오르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 경우 신한금융 사태는 KB금융에 이어 또다시 ‘관치 논란’으로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신한금융 내부는 물론 재일교포 주주들 역시 외부 수혈에 강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신한금융 노조 관계자는 “라 회장이 물러나더라도 차기 경영진은 신한금융 출신이 돼야 한다는 방침”이라며 “외부 수혈이 이뤄질 경우 (선임 반대 행동 등) 여러 방향을 생각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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