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경제뉴스]금융실명법 이슈 요즘 뜨거운데…

동아일보 입력 2010-09-28 03:00수정 2011-01-17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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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경제 양성화위해 1993년 긴급명령 전격 시행
차명계좌 개설자 처벌규정 없어 ‘비자금 악용’ 여전
《 신한금융 경영진이 금융실명법 위반 의혹으로 금융감독원과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금융실명법은 무엇이고 왜 문제가 되는 것인가요? 》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법)’은 크게 금융거래를 할 때 반드시 실명을 확인하도록 하는 조치와 금융기관이 계좌 주인의 동의 없이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금융 거래정보를 노출하지 못하도록 한 두 가지 조치를 뼈대로 하고 있습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금융실명법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17년 전인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금융실명법은 국회에서 공개적인 논의를 통해 법으로 제정된 것이 아니라 그해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의 긴급명령으로 전격 시행됐습니다. 이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었던 1972년 ‘사채동결조치’ 이후 두 번째로 이뤄진 긴급명령이었습니다.

그만큼 금융실명법은 반대도 심했고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큰 제도였습니다. 당시에는 차명(借名), 즉 다른 사람 명의를 빌려 계좌를 개설하거나 가명(假名)으로 금융거래를 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금융실명법을 실시하면 금융거래가 축소되고 주가가 폭락하는 등 큰 혼란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가 높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추적이 불가능해 범죄의 온상이 되는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고 차명계좌로 투기성 자금이나 비밀자금을 축적하는 것을 막는 데 금융실명법이 꼭 필요하다고 보고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철저한 보안 속에 금융실명법 시행을 강행했습니다.

발표 당일 곧바로 시행에 들어간 금융실명법의 주요 내용은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 등 모든 금융기관에서 예·적금과 주식 거래를 할 때에는 실명을 반드시 확인하도록 하고 3000만 원 이상을 인출하면 국세청에 통보해 자금 출처를 조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그동안 비실명으로 거래해 온 사람들은 2개월 내에 계좌의 명의를 실명으로 바꿔야 했고 이 기간을 넘기면 매년 10%씩 최대 50%를 과징금으로 부과해 실명전환을 하지 않고는 금융거래를 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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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격적인 금융실명법 시행으로 금융시장은 큰 혼란을 겪었지만 차명계좌에 보관돼 있던 6조 원 상당의 자금이 실명으로 전환되는 등 나름의 성과를 거뒀습니다. 무엇보다 숨어 있던 자금들이 실명으로 바뀌면서 부정부패 자금 추적이 쉬워져 정치인이나 기업들이 비자금을 확보하는 것을 막는 데 도움이 됐다는 평가입니다.

하지만 금융실명법이 도입된 지 17년이 지난 지금도 실명으로 전환을 하는 차명계좌들은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습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실명으로 전환된 금융자산이 288억6400만 원에 달한다고 하니 50%의 과징금을 물어내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아직 차명계좌를 유지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기업들이 직원들의 명의를 도용해 차명계좌를 만들고 여기에 비자금을 보관해둔 사례가 지금도 심심치 않게 적발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최근 금융실명법이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이유도 라응찬 신한금융 회장이 차명계좌로 개인자금을 관리해 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라 회장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준 개인자금 50억 원이 다른 사람 명의로 된 계좌에서 나왔다는 혐의가 포착돼 현재 금감원이 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신한은행이 이희건 신한금융 명예회장의 자문료를 횡령했다는 혐의로 고소한 신상훈 신한금융 사장도 이 회장 명의의 신한은행 계좌에 자문료를 송금한 뒤 이를 개인적으로 사용해 금융실명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금융실명법 위반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은 허술한 법체계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금융실명법은 실명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계좌를 개설해주거나 적법한 절차 없이 금융거래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넘긴 금융기관 직원만 처벌할 수 있을 뿐 차명계좌를 개설한 사람은 처벌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경영진의 지시를 거부하기 쉽지 않은 은행이나 기업 직원들이 처벌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의 명의를 빌려줘 차명계좌를 만들고 경영진은 이를 이용해 외부에 드러나기를 꺼리는 비밀 자금을 보관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에 따라 고의로 차명계좌를 개설한 사람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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