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권력투쟁 왜 반복되나

동아일보 입력 2010-09-17 03:00수정 2010-09-17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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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치-자율경영 파열음 증폭… 후계자도 안키워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을 처음 만난 건 2005년 5월 12일이었다. 조흥은행과 옛 신한은행의 통합 방식을 둘러싸고 이견을 보였던 최영휘 사장을 전격 경질해 한창 시끄러웠던 시기였다. 최 사장을 경질한 이유를 묻기 위해 전날 밤 그의 자택을 찾아간 기자에게 신한금융 측은 “제발 돌아가라. 그 대신 내일 라 회장과 티타임을 마련하겠다. 단 ‘최영휘 건’은 묻지 않는 조건”이라고 했다.

신한은행 본점 회장 집무실에서 만난 라 회장의 표정은 의외로 밝았다. 모든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변을 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왜 경질했냐’는 질문에는 묵묵부답이었다. 같은 질문을 이리저리 돌려 몇 번을 되물어도 “또 다른 오해를 낳을 수 있다”며 말을 아꼈다.

사건의 전말이 알려지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최 사장이 재일교포 주주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높아 경영권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에 대해 심각한 문제제기를 했고, 이는 곧 ‘라응찬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라 회장이 최 사장을 축출하자 금융가에서는 곧바로 권력투쟁의 희생양이 됐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번 신한금융 사태가 낯설지 않은 것은 2005년의 기억 때문이다. 가까이는 지난해 9월 황영기 전 KB금융그룹 회장 사퇴 이후 강정원 국민은행장이 회장 자리를 노리다 결국 사퇴한 KB금융 사태도 있다. 잊혀질 만하면 재방송을 하는 공중파 TV의 주말영화처럼 돌고 도는 게 한국 은행권의 권력투쟁사다. 주인공만 바뀔 뿐 ‘최고경영자(CEO) 장기집권에 따른 내부 권력 투쟁과 관치(官治)금융’이라는 스토리 구도는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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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뚜렷한 주인(지배주주)이 없는 은행에서 누군가가 1인자로 올라서면 장기 집권의 유혹에 빠져 후계자를 키우지 않는 후진적인 조직문화가 권력투쟁이 반복되는 이유다. 사외이사들이 CEO의 전횡을 견제하지 못하고 거수기로 전락하고 있는 것도 1인 지배체제를 공고히 해주는 요인이다.

보통 미국의 금융회사들이 미리 10∼15명의 ‘CEO 후보군(Pre-CEO)’을 뽑아 경쟁을 시킨 뒤 실적을 냉정하게 비교한 뒤 후계자로 낙점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경영실적이 아주 좋은 경우에 한해 한 번 정도 연임하는 게 관례다. 이런 엄격한 과정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허점이 노출돼 선진국 금융권에서는 승계시스템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번 신한금융 사태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금융권 경영 지배구조 개선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이 확실시된다.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법’을 마련하고 있는 금융당국에 신한금융이 ‘메가톤급 재료’를 제공하면서 명분과 여론을 실어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사회 산하 감사위원회의 위상을 강화해 경영진을 견제할 수 있도록 하고 대주주와 임원의 자격심사를 더욱 까다롭게 하는 방안이 조만간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외환위기 전만 해도 신한금융 사태와 같은 권력투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른바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 관료를 마피아에 빗댄 용어)를 중심으로 한 관치의 통제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환위기 후 은행 경영의 무게중심이 관치에서 자율로 서서히 옮아가면서 금융회사 CEO들이 관치와 자율경영 사이의 파열음을 이기지 못하고 줄줄이 물러난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금융당국의 중징계를 받고 물러난 은행권 CEO는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 최동수 전 조흥은행장,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 등 여럿이다.

전현직 재무 관료의 불만도 손을 대면 터질 듯한 풍선처럼 부풀어 있다. 최근 적잖은 모피아 강경파들이 “1%도 안 되는 쥐꼬리만 한 지분을 가지고 마치 오너처럼 전권을 행세하며 장기 집권하는 것은 분명히 개혁 대상”이라고 말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도움말 주신 분=이시연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이한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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