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가젤형기업’ 만든 사람들]<1>이경수 코스맥스 대표

동아일보 입력 2010-09-15 03:00수정 2010-09-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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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샤-더페이스샵 납품… 화장품 지각변동 이끌어 《제조와 유통을 분리해 화장품업계의 지각 변동을 일으킨 ‘코스맥스’, 중형 보일러 분야에서 자체 설계부터 시운전까지 모두 할 수 있는 유일한 회사인 ‘신텍’, 스크린골프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골프존’, 태양광 전문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코스닥에 상장된 ‘에스에너지’, 국내 대형공작기계 시장 점유율 1위 ‘한국정밀기계’…. 규모가 큰 회사도 아니고 모든 국민이 알 정도로 유명한 회사도 아니지만 해당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들이다. 이 회사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벤처기업협회에서 벤처기업과 중소기업 등을 대상으로 매출액과 성장률, 고용증가율 등을 조사해 선정한 ‘슈퍼가젤형기업’에 포함됐다는 점이다. 14개 슈퍼가젤형기업 중 해당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는 5개 기업의 성공 요인을 5회에 걸쳐 소개한다.》
이경수 코스맥스 대표이사 회장은 인생 이모작에서 크게 성공했다. 제약사, 광고회사에서 20년간 일하며 얻은 경영 노하우로 40대 후반에 코스맥스를 창업해 지난해 127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화장품 로드숍에서 화장품 용기 뒷면까지 유심히 살펴본 사람이라면 ‘코스맥스’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다. 코스맥스는 메이블린, 메리케이, 슈에무라, 더페이스샵, 미샤 같은 유명 브랜드에 화장품을 만들어 주는 연구개발제조(ODM) 전문기업이다. 지난해 코스맥스의 제품을 사용한 회사는 25개국 20개사에 이른다. 코스맥스 창업주 이경수 대표(64)는 1992년 40대 후반의 나이로 화장품 제조업에 뛰어들어 화장품업계 지각변동을 이끈 인물이 됐다. 코스맥스는 2007∼2009년 연속 3년간 30% 이상의 성장세를 기록하고 지난해 1276억 원의 매출을 올린, 대표적인 슈퍼가젤형기업이다.

“직장생활을 20년 했고 창업하기 직전에는 대웅제약에서만 11년 보냈어요. 그때는 내가 회사 차릴 거란 생각은 전혀 못했었지요.” 그는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서울대 약학과를 나와 동아제약 대웅제약 등 제약회사에서 14년간, 광고회사 오리콤에서 6년간 일했다.

직장생활에 마침표를 찍게 된 계기는 새로 부임한 상사와 손발이 맞지 않아서다. 그는 “대웅제약에서 전무 1년 차로 일할 때 사장이 새로 부임했는데 서로 팀워크가 맞지 않아 고민이 많았다”며 “마침 미국에 살던 매형이 사업할 것을 권한 것이 창업의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일본 화장품 시장에서 제조와 유통이 분리되어 있는 것을 보고 “한국도 곧 저렇게 가겠구나”라고 생각하던 차였다. 일본 유럽 미국의 화장품산업은 1960년대부터 제조와 유통이 분리됐지만 한국 화장품회사는 유통과 제조를 함께 했고 ODM 회사는 한국콜마 외에는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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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초기 자본금 5억여 원은 이 대표의 퇴직금과 집을 담보로 빌린 대출금, 매형의 투자금으로 마련했다. 재산의 대부분을 걸었기 때문에 망하면 끝이라는 각오였다고 한다.

창업 시 화장품 시장은 전형적인 ‘레드오션(포화시장)’이었다. ODM 사업도 활성화돼 있지 않아서 첫 10여 년 동안은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고비도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 때였다. 다들 어려워 제품을 소량만 구매하려 했다. 다품종 소량생산은 사실상 적자였지만 “거래처와 고통 분담한다”는 생각으로 품종당 최소 생산량인 1000∼2000개씩 만들어 주기도 했다.

참고 기다린 끝에 2000년대 들어 기회가 왔다. 중저가 화장품의 원조인 ‘미샤’가 화장품 가격을 파격적으로 떨어뜨리며 화장품업계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중저가 브랜드숍인 ‘더페이스샵’ ‘에뛰드하우스’ ‘이니스프리’ 등이 우후죽순 나타났고 이들이 화장품을 납품해줄 회사를 찾으면서 코스맥스는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당시 브랜드숍은 주로 규모가 작은 제조사와 거래했는데, 코스맥스의 제품은 품질이 탁월해 호평을 받았다. 코스맥스는 특허 49건, 기능성 화장품 승인 1597건을 등록하는 등 기술력이 상당한 회사다. 2004년 4분기부터 더페이스샵 제품을 50% 이상 납품하면서 매출이 뛰었다. 200억 원대이던 매출은 2004년 385억 원, 2005년 515억 원으로 증가했다.

현재 코스맥스는 해외 시장으로 발을 넓혀가고 있다. 2004년 중국 상하이에 세운 ‘코스맥스 상해’는 2007년 흑자전환 뒤 매년 60% 성장하고 있다. 굴지의 화장품회사 로레알, 존슨앤드존슨과도 거래 폭이 확대되어 가고 있다. 로레알과는 2000년 초 홍콩 박람회에 차린 코스맥스 부스에서 만나 관계를 트기 시작했고 2005년에 메이블린 브랜드로 아이섀도를 납품한 데 이어 지금은 로레알 파리 등으로 납품을 확대하고 있다.

이 대표가 세운 중기적 목표는 △한국 화장품 브랜드의 해외 진출에 기여 △중국 시장에 집중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 관계 강화 등 3가지. 장기 비전은 물론 ‘세계 1위의 ODM 기업’이 되는 것이다.

이 대표만큼 인생 이모작에 성공한 사람도 드물다. 그는 이모작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일부러 창업을 준비하지는 말라”고 조언한다. ‘미리 준비해라’는 말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의외의 말이지만 미래를 위해 현실을 희생하지 말고, 현실에 충실하다 보면 미래를 위한 길이 준비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는 “월급쟁이 시절에 회사 생활 하면서 마음 아프고 괴로운 일도 많았는데 그게 다 경영수업이었다”며 “누구에게나 기회는 오고, 준비된 사람만 기회를 잡을 수 있지만 미래에 사업가가 되겠다고 다른 일에 골몰하는 것보다 현재 맡은 일에 충실하면서 고객, 상사 등과 잘 사귀다 보면 그게 다 사업할 때 피가 되고 살이 된다”고 말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 슈퍼가젤형기업 ::

매출이나 종업원이 3년 연속 평균 20% 이상 성장한 기업을 가젤형기업이라고 하고, 이 중에서 매출액이 1000억 원 이상이면 슈퍼가젤형기업이라고 부른다. 성장이 빠르고 고용증가율이 높아서 ‘빨리 달리면서 높게 점프하는’ 영양류의 일종인 가젤과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 ‘슈퍼가젤형기업’ 14곳 성공 요인 분석해보니 ▼
[1] 참신한 발상 [2] 전문지식 [3] 성공확신

동아일보 산업부가 14개 슈퍼가젤형기업의 성공 요인을 분석한 결과 이 회사들이 최근 몇 년 동안 비약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최고경영자(CEO)의 탁월한 역량과 리더십인 것으로 조사됐다.

슈퍼가젤형기업 CEO 14명 중 12명은 이공계 출신이며, 10명은 삼성전자와 LG전자, 두산중공업 등 기업에서 10년 이상 근무하다가 40세를 전후해 창업했다. 기업에서 근무하면서 쌓은 경험과 전문지식이 틈새시장을 찾아내 판로를 개척하고 회사를 운영하는 데 도움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CEO 14명 중 10명은 직접 회사를 설립한 창업주이다. 이들 10명 모두 자신의 사재를 털어 회사를 설립했고, 남들이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아이디어로 지금의 회사로 키워냈다. 창업 초기에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과 기존 관행을 깨는 참신한 발상으로 난관을 극복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미순 벤처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신생 회사가 성장하기 쉽지 않은 국내 산업계 현실에서 회사 규모가 1000억 원 이상이면서 3년 연속 20% 이상 성장했다는 것은 특정 분야에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며 “슈퍼가젤형기업은 후발 벤처기업의 역할 모델이 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유기적으로 발전하는 데 중개자 역할을 하는 기능이 있다”고 말했다.

황진영 기자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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