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20일 국무회의에서 “한국과 중국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검토하라”고 지시함에 따라 그동안 연구 단계에 머물러 있던 한중 FTA가 급물살을 타게 됐다. 한국의 최대 교역상대국이자 미국을 견제할 만한 강국으로 부상한 중국과의 FTA 체결은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정치 외교 면에서도 상당한 파급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한중 양국 정부가 결단을 내리기만 한다면 올 하반기 첫 공식협상을 시작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보면서도 실제 타결에 이르기까지는 숱한 고비를 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동아시아경제권 진입 절실 中-대만 경제협력 속도내자 中시장 공략 韓기업 빨간불 제조업체 59%
“FTA 찬성”
업종별 희비 엇갈려 자동차 - 정밀기계 수출 날개… 농산물 - 의류는 직격탄 맞아 하반기 협상 쉽지 않을 듯 ○ 다목적 포석의 한중 FTA 추진
이 대통령의 한중 FTA 추진 지시는 표면적으로 한국의 최대 교역상대국인 중국과의 FTA를 통해 경제규모를 키우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지난해 한중 무역규모는 1140억 달러로 한국 수출의 23.8%가 중국에 대한 수출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경쟁국 업체들의 중국 시장 잠식으로 한국 기업들의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중국이 올 1월 대만과 경제협력기본협정(CEFA) 협상을 시작해 6월 마무리할 예정인 점도 심상치 않은 대목이다. 이에 따라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들은 한중 FTA를 서둘러 추진해야만 중국에서 입지를 유지할 수 있다는 의견을 여러 경로를 통해 정부에 전달했다.
이번 한중 FTA 추진 지시는 자동차 산업 개방에 따른 손실을 들어 한미 FTA 비준을 미루고 있는 미국 측을 압박하려는 포석에서 나온 것이라는 분석도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12일(현지 시간) 핵안전보장정상회의 참석차 미국 워싱턴을 방문했던 이 대통령이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한미 FTA 비준을 계속 미루면 한국이 중국과 먼저 FTA를 체결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실제 중국은 화교가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ASEAN)에서 이미 경제적 주도권을 확보한 만큼 한중 FTA까지 성사되면 미국으로선 동아시아 경제에 진입하는 것이 매우 힘들어질 수 있다. 한미 교역은 계속 줄어드는 반면 한중 교역은 늘어나는 상황이란 점도 미국으로선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 자동차 정밀기계에 축복, 농업은 타격
전문가들은 한중 FTA를 맺으면 한국은 자동차와 정밀기계의 수출이 크게 늘어 전체적으로 이득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생산품목이 비슷한 농산물 분야와 노동생산성에서 중국과 비교가 되지 않는 의류 및 섬유업종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최정석 한국무역협회 무역통상실장은 “한국의 제조업체 중 절반 이상이 한중 FTA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대중 투자 확대로 인한 국내 산업 공동화 등 FTA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을 보완해가며 한중 FTA를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초 무역협회가 국내 제조업체 3000개사를 대상으로 한중 FTA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58.8%가 찬성, 36.8%가 반대했다. 특히 정밀기계 자동차 등의 업계에서 찬성률이 더 높았다. 지난해 대중 무역흑자는 324억5000만 달러로 전 세계 국가 중 무역흑자가 가장 컸다.
한중 FTA가 농업 및 수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종전의 한미, 한-유럽연합(EU) FTA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미 중국 농산물이 한국의 식탁을 장악한 상태에서 관세 인하까지 이뤄진다면 한국의 농업은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국으로부터 농산물 수입이 급증하면 한국 농업 생산액이 10∼14% 감소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화섭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중 FTA는 국내 고부가가치 산업에는 축복이겠지만 의류, 섬유, 농식품 등의 분야는 악몽일 수 있다”며 “협상 과정에서 한국 산업의 융합화와 고도화를 동시에 추진하고 피해 예상 산업의 발전책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양국이 진행 중인 산관학 공동연구가 마무리돼도 실제 협상에 들어가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양국이 협상의 큰 원칙을 정하고 산업별 대응전략을 짜야 하기 때문이다.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한국과 중국은 서로에게 워낙 크고 중요한 시장이기 때문에 민감한 부분에 대해 확실한 입장 정리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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