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2000원짜리 싼 술로는 한계…품질부터 높여야 성공

  • 동아일보

막걸리가 세계적인 술로 도약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었지만 아직은 부족한 점, 개선해야할 점이 더 많다. 동아일보 산업부는 막걸리 세계화를 위한 조언을 듣기 위해 전통주, 외국 술, 요리, 경영 관련 국내외 전문가 25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했다. 이들은 막걸리가 세계인의 술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 5가지 요건이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품질 개선

막걸리는 좋은 향 대신 시큼한 냄새가 난다. 1000~2000원 정도면 살 수 있는 투박한 가격의 술이다. 많은 양조업체들이 싼 재료와 빠른 생산 공정을 통해 저가의 막걸리 생산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막걸리 세계화의 기본적인 조건으로 현재보다 높은 품질의 막걸리를 생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장은 "주원료의 최고급화, 핵심기술과 누룩, 발효방법, 발효·숙성 기간, 양조횟수, 제조시기 등에 대한 연구를 통해 주질(酒質)의 고급화를 이뤄야 막걸리가 와인을 능가하는 세계적인 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막걸리의 품질을 좋은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통기한을 늘리는 기술 개발이 시급하다. 냉장 보관해서 열흘을 겨우 버틸 수 있는 생 막걸리는 저장성이 떨어지는 단점을 극복해야 한다. 예종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해외로 진출시키려면 오래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유통기한이 짧은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장인석 농식품가치연구소장도 "상업적으로 성공하려면 대량 생산이 필수적인데, 이를 위해서는 유통기한 문제 해결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3년간 10억 원을 투입해 누룩의 발효 속도를 늦추는 등의 방법으로 생막걸리의 유통기한을 3개월 정도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연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문화상품화

스카치위스키는 '과거 왕가에서 마시던 술을 현재에 마신다는 느낌'을 강조하며 마케팅을 하고 있다. 와인의 한 종류인 보졸레누보는 원료가 좋은 품종의 포도가 아니지만 햇포도로 만든 와인을 세계에 동시에 출시한다는 스토리를 만들어 마케팅에 성공했다. 사케는 쌀의 도정 정도를 따지고, 경연대회를 하면서 문화상품화하고 있다.

스카치위스키 '맥켈란'의 매슈 터너 글로벌 홍보담당 매니저는 "스카치위스키를 마신다는 것은 오래된 역사를 느끼는 기회라는 점이 홍보의 주요 포인트"라며 "막걸리도 오래된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리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와인 칼럼니스트 김혁 씨는 "막걸리는 동네 작은 양조장에서, 주막에서 주모가 빚어낸 소박하고 고즈넉한 멋을 가진 술"이라며 "이런 막걸리의 이미지를 세계인들에게 전해주고, 그들이 우리나라를 찾았을 때 지역별로 다른 전통적인 맛과 멋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막걸리가 외국의 발효주에 비해 양조과정이 단순한 것은 문화상품화하기에 좋은 요소다. 신근중 이마트 주류담당 바이어는 "막걸리 타운 조성 등을 통해 외국인들에게 양조 체험을 하도록 시음행사, 기념품 판매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래된 양조장 복원, 제조 체험, 음주문화 강습 등도 문화상품화를 위해 가능한 방안으로 제시됐다.

●전문인력 양성

막걸리는 기후와 물, 쌀 등이 어울려 맛을 내는 술이다. 하지만 어떤 조합이 좋은 맛을 내는지, 전통 누룩을 어떻게 발전시킬지 등에 대한 연구는 미미한 수준이다. 박록담 소장은 "해방 후 60년 동안의 연구는 일본식 주조방식인 입국법을 이용해 상품화하는 데 열을 올리는 수준이었다"며 "이제라도 다양한 전통 누룩을 복원하고 이를 이용한 다양한 전통술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 인력의 양성이 필수적이다. 독일 등에서는 철저한 교육을 통한 전문인력 양성으로 수백 년 넘게 맥주의 장인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샤샤 라이펜부르크 브루 마스터(맥주 제조 기술자)는 "독일 양조 교육과정은 입학생 절반 정도가 낙오할 정도로 힘든 과정"이라며 "장인정신을 어설픈 교육으로 망쳐선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동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품질을 고급화하는 것은 물론 막걸리를 감별하고 추천하는 역할을 할 전문인력 양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식과 동반 진출


훌륭한 술은 음식과의 조화가 중요한 요소다. 막걸리를 마시려 해도 같이 먹을 만한 음식이 없으면 마시기 어렵기 때문이다. 세계화를 위해서는 한식과의 연계가 필요하다.

뱅상 아브넬 '도멘 패블리' 수출담당 디렉터는 "보르도에 와인 공부를 하러 온 한국인이 많지만 한국식당은 한 곳도 없어 한국 술을 마시고 싶어도 마실 곳을 찾기 어려운 게 프랑스에서의 현실"이라며 "막걸리가 프랑스에 들어오려면 진입할 수 있는 열쇠가 필요한데, 그것은 한국식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스카치위스키협회 데이비드 윌리엄슨 홍보담당 매니저도 "다양한 술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유럽 시장에서 막걸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외국인들의 관심이 높은 한식과 함께하는 술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게 좋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주질 개선, 도수 상향 등을 통해 잘 차린 한식 상에 어울리는 막걸리 개발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 파전, 빈대떡, 묵무침 등 몇 가지로 한정된 안주를 더 개발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불필요한 규제 완화

다양하고 특성화된 막걸리를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록담 소장은 "재료 배합 비율, 도수 등이 정해져 있어 획일적인 주질의 저가주가 범람할 수밖에 없다"며 "제조 방식을 다양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조재선 한국전통주진흥협회 회장은 "발포성, 탄산미 개선을 위해 맥주에 사용하는 호프를 첨가하면 막걸리로 취급받지 못해 높은 주세를 내야 해 품질 개선을 위해 다양한 원료를 사용하는 것도 제약이 따른다"며 합리적 수준에서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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