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케르베로스’ 앞에 선 김봉수 거래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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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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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신화에는 기이한 존재들이 수없이 많이 등장한다. 그중 죽은 자들의 신인 하데스의 개(犬), 케르베로스도 독특한 괴물 축에 든다. 저승 입구를 지키는 케르베로스는 몸은 하나지만 머리는 세 개나 된다. 살아 있는 채로 저승에 들어서지 못하게 사나운 경비견 세 마리가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머리 세 개가 한꺼번에 잠들거나 한눈파는 일은 없을 테니 허가 없이 케르베로스 옆을 지나가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케르베로스 얘기로 글머리를 연 이유는 좀 엉뚱한 연상이 발동해서다. 요즘 김봉수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마치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케르베로스 앞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김 이사장이 만족시켜야 하는 대상을 크게 나누면 거래소 주주들과 임직원들, 정부의 세 그룹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김 이사장은 거래소의 주인을 기쁘게 하는 주주 존중 경영에 앞장서야 한다는 명제에 직면해 있다. 40곳이 넘는 증권, 선물회사 주주들은 그동안 거래소에 주인 행세를 하기는커녕 심부름꾼 노릇을 하느라 불만이 많았다. 그는 이사장 후보 선출을 앞두고 주주회사 사장들을 찾아다니며 “(이사장이 되면 거래소를) 확 바꾸겠다”라며 목청을 높였다고 한다. ‘낙하산 이사장’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데 익숙했던 사장들은 속 시원함과 함께 기대를 품었음직하다. 그 자신이 증권사 밑바닥에서부터 경력을 쌓아 일선 증권업계의 바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점도 높은 기대수준을 형성하게 한 요소였으리라.

하지만 증권, 선물업계의 기대치가 ‘친절한 거래소’ 수준에서 그칠까. 이미 거래소 예산 편성에 주주들의 의견을 반영해 달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조 원이 넘는 이익잉여금으로 수수료를 더 낮추거나 배당을 더 많이 달라고 주장하는 일은 시간문제일 듯하다.

거래소 자체의 쇄신은 김 이사장이 최우선으로 수행해야 할 과제다. 그는 지난해 12월 말 취임사에서 변화와 도전을 강조했다. 인력을 10%, 직제를 14% 넘게 줄이겠다는 큰 방향도 제시했다. 하지만 어느 조직이나 환골탈태(換骨奪胎)에는 저항이 따를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런저런 요구사항을 구체적으로 내거는 노동조합보다 복지부동(伏地不動), 무사안일(無事安逸), 오불관언(吾不關焉)이 스며든 거래소 분위기가 훨씬 다루기 힘든 상대일 수 있다.

정부와의 관계를 지혜롭게 풀어나가는 일은 투표로 선출된 김 이사장만의 부담이라 하겠다. 지난해 졸지에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서 거래소 직원들은 물론 주주들의 불만도 높아졌다. 정부가 한 푼의 지분도 갖고 있지 않으면서 산하 공기업처럼 간섭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정부는 정부대로 방만한 거래소를 그냥 둘 수 없다며 눈을 부릅뜨고 있다. 투표로 뽑힌 김 이사장이 주주와 임직원의 대변인이 될지, 정부의 대리인 역할을 할지는 미지수다.

다시 그리스신화로 돌아가자. 케르베로스를 무릎 꿇린 대표적인 영웅 두 사람이 있다. 무지막지한 힘으로 케르베로스의 목을 동시에 졸라 제압한 헤라클레스가 그중 한 명이다. 다른 한 명은 산천초목도 감동시켰다는 리라 퉁기는 솜씨로 케르베로스가 눈물을 흘리며 길을 비켜주게 한 오르페우스다. 과연 김 이사장은 어느 쪽에 해당될까. 이도저도 아니라면…?

이진 경제부 차장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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