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경영에 글로벌 날개를…” 기업들 ‘코로벌’로 날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4일 03시 00분


삼성전자-LS전선, 폴란드-북미 기업 인수
SK텔레콤-SK네트웍스, 일부 사업 中에 둥지
LG전자 해외 판매법인장 외국인으로 12% 교체

‘세계 1위의 검색엔진인 구글이 왜 한국에서는 죽을 쑤는 것일까.’ 중국에 진출한 인터넷 및 통신사업의 부진 원인을 분석하던 SK그룹은 한국 시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구글 사례에 주목했다. 구글은 미국 본사의 서비스 형태만 고집하다가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를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중국을 제2의 내수시장으로 만들자’며 현지화를 추진했던 SK도 한국에서 성공한 모델을 중국 시장에서 고집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따라 SK는 SK텔레콤의 인터넷사업본부(C&I CIC)를 아예 중국으로 옮기는 ‘결단’을 내렸다. 독립된 회사처럼 움직이는 인터넷사업본부는 앞으로 중국에서 한국 내의 인터넷 사업까지 챙기게 된다. SK네트웍스도 중국 본사를 만들고 주요 사업의 본부를 중국으로 옮겼다. SK 관계자는 “앞으로 중국에서 사업을 시작해 거꾸로 한국 시장에 진출하는 일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형 글로벌 기업을 뜻하는 ‘코로벌(Korobal·Korea+Global) 기업’이라는 새로운 전형이 만들어지고 있다. 코로벌 기업은 한국형 경영 노하우와 글로벌 경영 마인드를 접목해 글로벌 경영에 나서는 코리아 기업을 말한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경영이 세계 일류 상품을 만들어 해외에 내다 파는 ‘글로벌 세일즈’에 그쳤다면, 이제는 본사를 외국으로 이전하거나 해외 기업 인수, 외국인 인재 영입 등 세계 자원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글로벌 매니지먼트’로 발전하고 있다.

○ 코로벌 경영에 뛰어든 한국 기업들

LS전선은 국내 역량만으로 추진해 온 전선사업을 해외 인수합병(M&A)을 통해 글로벌화에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이 회사는 지난해 8월 북미 전선시장 1위 업체인 미국 슈페리어 에식스를, 올해 9월 중국 전선업체인 훙치(紅旗)전기를 인수했다. 슈페리어 에식스의 영업망을 활용해 독일 지멘스에 철도용 케이블 790만 유로(약 133억 원)어치를 처음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취약했던 중국 시장 기반도 보완했다.

LS그룹에 인수된 후에도 두 회사 임원은 한 명도 이탈하지 않았다. 이 중 슈페리어 에식스의 최근 퇴직률은 5.3%로 인수 전(6.5%)보다 낮아지는 등 조직도 안정됐다. 국가별로 발행하던 사보(社報)를 하나로 통합하는 등 ‘LS패밀리’ 캠페인을 펼치고, 구자열 LS전선 회장 등 본사 최고경영진이 중국어를 익히는 등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슈페리어 에식스에선 한국어 공부 열기도 일고 있다. 미국, 중국 회사를 잇달아 인수한 LS전선은 앞으로 3년 내에 본사 일반 직원의 10%를 외국인으로 채울 계획이다.

지난해 경기 용인의 삼성그룹 연수원. 삼성전자 신규 임원 승진자 교육에서 ‘삼성전자가 글로벌 기업인가?’라는 토론 주제가 나왔다. 200여 명의 신규 임원들 중 ‘우리는 글로벌 기업’이라고 자신 있게 답한 사람은 절반 정도에 그쳤다. 많은 임원이 “우리는 내부 역량을 활용해 글로벌 프로덕트(제품)를 만드는 것일 뿐 아직 전 세계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글로벌 경영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아직은 부족하다”고 스스로를 진단했다.

최근 삼성전자는 M&A에 적극 나서는 등 글로벌 경영 행보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원래 삼성전자는 해외 기업을 사들이는 데 소극적인 편이다. 1990년대 미국 컴퓨터 회사 AST 등을 인수했다가 핵심 인력의 이탈로 인수 효과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신 ‘직접 기술을 개발해 성장동력을 찾자’는 전략에 주력해 오늘의 삼성전자를 만들어 냈다. 이런 삼성전자도 최근 해외시장의 빠른 변화에 대응해 시장과 기술을 확보하려면 해외 기업 M&A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경영방침을 대폭 수정하고 있다.

LG전자는 글로벌 경영을 위한 ‘혼혈문화’ 도입에 앞장서고 있다. 본사의 최고재무책임자(CFO),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제외한 모든 ‘C레벨(최고경영진)’을 외국인으로 교체한 데 이어 올해 인사에선 해외 판매법인장의 12%를 외국인으로 바꿨다.

국내 기업들이 코로벌 기업으로 진화하려는 것은 기존 시장과 역량에 기대는 성장 방식으로는 한계에 다다랐고, 스스로 글로벌 기업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 해외에서 코로벌 기업 관심 커져

해외에서도 한국형 글로벌 경영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코로벌 기업’의 경영 방식에 대한 분석도 시작됐다. 국내 기업들이 아커야즈(크루즈선), 밥캣(건설장비) 등 각 분야 세계 1, 2위를 다투는 기업을 인수하면서 ‘한국 기업의 경영 스타일’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포스코 등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른 국내 기업에는 매년 수천 명의 해외 대학, 기업 관계자들이 ‘한국을 배우자’며 방문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베인&컴퍼니의 이성용 대표는 “최근 외국의 고객사들로부터 한국형 경영에 대해 ‘일본형, 중국형과 무엇이 다르냐’며 분석해 달라는 요청을 부쩍 많이 받고 있다”며 “한국 기업의 성공 모델을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확산시킨다는 측면에서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코로벌 기업’의 탄생에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경영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국형 경영은 △도전적인 자세와 △‘할 수 있다(Can do)’는 정신 △한정된 자원 활용을 위한 선택과 집중 △빠른 의사결정 등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높은 경영목표 △‘빨리빨리’ 문화 △전문경영인의 역할 부족 △언어장벽 등 부정적인 인식도 적지 않다. 특히 일본, 중국, 인도에 비해 한국인 경영자들의 해외 진출이 적어 상대적으로 정보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도 한국식 기업 경영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요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용화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우리뿐 아니라 중국, 인도 등 후발 국가들이 글로벌 경영에 앞 다퉈 나서는 모습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며 “해외에선 아직 한국의 경영이 중국, 인도보다 글로벌화가 덜 돼 있다는 시각도 많다”고 말했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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