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도 몰랐던 공공기관 ‘복지 이면합의’

  • 입력 2009년 9월 5일 02시 51분


육아휴직 3년… 창사기념 특별승급…
■ ‘알리오’ 공시시스템으로 살펴본 노사 합의
경영-인사권 침해논란 조항은 최근 개선
감사 강화로 ‘과도한 복지’도 축소 움직임

《자녀당 최대 3년간 육아휴직, 급여가 지급되는 청원 휴직, 법적 근거 없는 국내외 연수…. 공공기관 노사가 이면(裏面) 합의한 과도한 복지 혜택 내용이 4일 새롭게 드러났다. 이는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시시스템인 알리오(www.alio.go.kr)에 공공기관 노사가 맺은 모든 합의사항을 등록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으로 이면합의 내용이 세세하게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속합의서, 보충협약, 노사협의회 합의사항 등 각기 다른 이름을 달고 있는 공공기관 노사의 이면합의에는 민간 기업에서도 부러워할 만한 복지혜택이 다수 포함돼 있다. 상당수 공공기관은 그동안 외부에 노출하고 싶지 않거나 예산 항목에 반영되지 않은 복지제도를 이면합의로 은밀하게 시행해 왔다.

반면 최근 단체협약을 새로 맺으면서 노조의 경영권 및 인사권 침해 논란이 제기된 조항을 개선한 공공기관도 점차 늘고 있다. 특히 경영진의 고유 권한인 인사에 노조가 개입할 수 있도록 한 단체협약 조항을 삭제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 이면계약에 드러난 과도한 복지

“공사 창립 20주년을 맞아 (2003년) 9월 1일부로 1등급 특별승급을 시행한다.”

2003년 10월 한국가스공사의 오강현 당시 사장과 신익수 당시 노조위원장이 맺은 ‘임금협약에 대한 부속합의서’ 첫 번째 조항이다. 가스공사는 매년 1등급 승급을 하지만 그해만은 호봉을 2등급씩 올려 편법으로 임금 인상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가스공사 측은 “당시 그렇게 합의했지만 사회 분위기상 결국 시행하지는 못했다”고 해명했다.

대한주택공사 노사는 올해 3월 노사협의회를 열고 만 6세 이하의 취학 전 자녀를 둔 여직원이 최대 3년까지 육아휴직을 쓸 수 있도록 했다. 자녀가 두 명이면 6년까지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 노동조합 창립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07년에 한해 유급 휴무일을 하루 지정해 사용하기도 했다.

한국거래소 노사는 ‘2006년 보수 및 단체협약’에서 증시 개장 50주년, 코스닥시장 및 선물시장 개장 10주년을 기념해 축하금을 지급하도록 합의했다. 직원의 경우 기준 봉급(전체 급여의 약 50%에 해당) 및 직무수당 합계액의 100%를 지급하기로 했다. 지방에 근무하는 미혼 직원에게 연 100만 원 이내의 결혼정보회사 가입비를 지원하는 조항도 주위 비판으로 올 3월 폐지될 때까지 3년간 운영해 왔다. 이와 별도로 1년 이내 기간에 청원휴직을 할 수 있고, 첫 6개월은 급여(연봉의 10∼20%)를 지급한다.

한국공항공사는 2006년 9월 노사협의회에서 구체적인 법적 근거 없이 ‘노사 합동 국내외 연수’를 결정했다. 그 후 18명 내외를 뽑아 각각 금강산과 중국에 4박 5일씩 보냈다. 이 제도는 경기 불황으로 지난해부터 잠정 중단됐다.

○ 하나둘 사라지는 독소조항

올해 6월 ‘2008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기관과 기관장 모두 최하위 평가를 받았던 영화진흥위원회는 7월 단체협약에서 △성과상여금 지급 시 노조 합의 △노조의 국내외 출장비 지원 △쟁의기간 중 임금 지급 및 민형사상 책임 면제 등의 조항을 모두 삭제했다.

한국수출보험공사도 5월 단협에서 조합간부 인사 시 사전에 조합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조항을 ‘협의’로 바꾸고, 성과배분제 시행과 관련해 조합과 별도 ‘합의’해야 하는 조항을 ‘협의’로 변경했다.

재정부는 “올해 5월 이후 17개 공공기관이 단협을 개정했는데 대부분의 기관이 노사선진화를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감사원의 강도 높은 감사에 따라 과도한 복지혜택도 축소되고 있다. 대한석탄공사는 노사 간 이면합의를 통해 신설한 ‘보건관리비’(14억 원 지급)와 정년 퇴직자 등에게 지급근거 없이 1인당 평균 8600만 원의 공로금을 주는 제도를 감사원 지적에 따라 최근 폐지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단협뿐 아니라 각종 노사협의회 합의사항과 보충협약을 공개함으로써 공공기관 노사의 모든 합의사항이 드러나게 됐다”며 “새로 부임한 기관장이 노조의 협력을 얻기 위해 각종 이면계약을 맺는 관행을 뿌리 뽑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밝혀왔습니다▼

△본보 5일자 A10면 ‘神도 몰랐던 공공기관 복지 이면합의’ 기사 중 ‘대한주택공사 노사는 만 6세 이하의 취학 전 자녀를 둔 여직원이 최대 3년까지 육아휴직을 쓸 수 있도록 했다’는 내용에 대해 주택공사 측은 “여직원에 대한 최대 3년간의 육아휴직은 2008년 3월에 개정된 국가공무원법에 규정돼 있다”고 밝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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