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해진 나라살림, 목표 낮추고… 늦추고… 접는다

  • 입력 2009년 9월 3일 02시 54분


■ 2009~2013년 국가재정 운용계획 주요 내용

글로벌 경제 위기로 세수 주는데 지출은 늘어… 빚 2012년까지 급증할 듯
친서민 민생지원은 강화, 4대강 지출도 계속 늘려… 신종플루 관련 예산 신설

기획재정부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2009∼2013년 국가재정운용계획’ 초안은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로 정부가 향후 나라살림 계획을 대폭 수정했음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한 문건이다. 경제위기로 세수(稅收)가 부족해진 상황에서 재정지출을 늘린 결과 나랏빚이 급증하는 현상이 올해에 이어 내년은 물론이고 2012년까지 지속된다고 봤다.

정부의 고충은 재정운용계획의 핵심인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대폭 낮춘 대목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명박 정부의 ‘7·4·7(임기 중 7% 경제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강국 도약) 공약’을 포기해야 할 만큼 대내외 경제 환경이 악화됐다는 뜻이다. ‘7·4·7 공약’은 기업친화적인 정책으로 한국 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키겠다는 MB노믹스의 핵심 슬로건이었다. 성장 드라이브 정책이 대내외 변수 때문에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서민 친화적인 기조로 정책 방향을 미세하게 조정했음을 중기재정계획에서 일부 엿볼 수 있다.

○ ‘경제위기로 7% 성장은 무리’ 자인

재정부는 지난해 9월 말 현 정부의 첫 번째 중장기 재정운용목표인 ‘2008∼2012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재정운용계획의 뼈대는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매년 단계적으로 상승시켜 현 정부 임기 마지막 해인 2012년에는 6.6∼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재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철학과 국정지표를 구현하기 위한 재정운용 목표와 전략을 제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야심 찬 청사진은 1년 만에 크게 바뀌었다. 이번에 마련한 재정운용계획에서 2010∼2013년 성장률 목표를 4∼5% 수준으로 2%포인트 이상 낮춰 잡은 것. 한국 경제는 정부의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에 힘입어 세계에서 가장 빨리 경제위기를 탈출하는 ‘우등생’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정부 스스로 ‘7% 성장은 무리’라고 자인한 셈이다.

HSBC은행도 최근 ‘한국경제전망’ 보고서에서 한국이 경제회복을 하더라도 4∼5% 이상의 성장률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7% 성장 목표는 글로벌 경제위기라는 암초를 만나면서 ‘사실상 물 건너간 공약’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들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경제성장률은 정부의 경제운용 종합성적표인 만큼 섣불리 단언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번에 공식 문서에 명시함으로써 ‘솔직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됐다.

○ 재정건전성 일부 훼손 불가피

재정건전성에 대한 목표치도 크게 후퇴했다. 정부는 지난해 재정운용계획에서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매년 낮춰 2012년 30.9%까지 떨어뜨리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에는 “40%를 초과하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2013년 30%대 중반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보고했다. 경기회복세가 완연해질 때까지는 현재의 확장정책 기조를 유지할 방침이어서 일정 부분 재정건전성의 훼손이 불가피하다고 본 것이다.

눈여겨볼 것은 마지노선을 40%로 정한 대목이다. 그동안 상당수 재정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이어갈 경우 국가채무가 올해 366조 원에서 내년 400조 원 안팎으로 불어나고 국가채무 비율도 35.6%에서 40% 안팎으로 올라갈 것으로 우려해 왔다. 박형수 한국조세연구원 재정분석센터장은 “국가채무 비율을 40% 안에서 묶겠다는 것은 재정건전성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재정지출 수요를 얼마나 잘 억제하면서 40% 목표를 지킬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재정수지의 균형시점도 2012년에서 2013∼2014년으로 연기됐다. GDP 대비 재정수지(관리대상수지 기준) 적자 비중은 지난해 ―1.6%에서 올해 ―5.0%로 3배 이상 커진 상태다. 정부는 재정적자 규모를 연도별로 줄여 2013년 이후 세입과 세출의 균형을 달성하겠다는 방침이다. 재정부 당국자는 “외환위기 때 재정수지가 적자로 돌아섰다가 흑자로 전환되기까지 걸린 기간을 감안했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GDP 대비 재정수지가 ―5.1%까지 떨어졌다가 이후 점차 축소돼 2002년 0.7% 흑자로 돌아선 만큼 이번에도 최소 4, 5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 재원 배분 방향에도 ‘친(親)서민’ 강조

중장기 재원배분 방향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가 감지된다. 특히 재정건전성 훼손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으면서도 ‘재정의 지속성 확보 노력 강화’를 주요 원칙으로 내세운 것이 눈에 띈다. 그러면서도 4대강 살리기와 광역경제권 활성화 등 주요 국정과제에 대한 투자소요는 적기에 반영하겠다고 밝혀 당분간 이 분야에 대한 재정지출이 늘어날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정부가 최근 들어 부쩍 강조하는 친(親)서민 대책도 반영됐다. 정부는 “민생안정 지원을 강화하되 저소득층 지원을 위주로 내실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근로 능력이 없는 계층에 대해선 기초생활보장 등 공적 부조를 강화하고 △여성 노인 등 취약 계층의 자활과 근로능력 확충에 힘을 쏟으며 △복지 수요자 중심으로 복지전달체계를 개선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지난해 재정운용계획에는 없었던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 및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등 예방적 보건의료 투자 확대’ 목표도 새로 포함됐다. 이는 신종 인플루엔자A(H1N1)와 같은 새로운 유형의 전염병 관리에도 각별히 신경을 쓰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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