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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8월 24일 02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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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민사40부(수석부장판사 이성보)는 K사가 신한, 한국씨티, SC제일은행을 상대로 낸 통화옵션상품 키코(KIKO) 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항고를 기각했다고 23일 밝혔다.
재판부는 은행이 계약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등 고객보호 의무를 위반했다는 주장에 대해 “환율 급등 시 K사가 부담할 위험을 특별히 강조하지 않고 주로 환율의 하락 전망 내지 안정적 변동 가능성을 전제로 상품을 설명했다는 것만으로 K사가 위험성을 올바로 인식하는 것을 방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는 서울중앙지법이 4월 다른 키코 사건의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기업이 내용이 복잡한 키코 계약을 체결하면서 신중하지 못한 결정을 할 가능성이 큰데도 은행이 설명의무를 게을리 한 채 적극적 판촉활동을 했다”며 ‘엄격한 고객보호 의무’를 판단근거로 제시한 것에 비해 은행의 책임 부분을 크게 완화한 것이다.
재판부는 또 “키코 계약은 환율 변동의 확률적 분포를 고려해 은행과 기업의 기대이익을 대등하게 했다”며 업체가 환율 변동으로 얻는 수익은 제한적인 반면 손실은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는 키코의 계약 구조가 불공정하다는 K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계약 체결 과정에서 사기 또는 착오가 있었다는 주장도 “K사가 계약 체결 이전에 여러 차례에 걸쳐 통화옵션 계약을 체결한 점 등을 감안할 때 환율이 하락할 경우 생겨날 위험을 알고도 이를 감수했다고 볼 수 있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 결정은 키코 계약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상급법원인 고등법원에서 처음으로 기준을 제시한 것이어서 항고심에 계류 중인 20여 건의 다른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은행이 계약 체결 과정에서 기업에 부당한 강요를 했는지 등 사실관계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움직이면 시장가격보다 높은 환율로 외화를 팔 수 있지만 환율이 일정선 이상이 되면 계약금액의 2, 3배를 시장가격보다 낮은 환율에 팔아야 하는 통화옵션 상품이다. K사 등 키코에 가입한 중소기업 100여 곳은 2007년 말∼2008년 초 국제 금융위기로 환율이 급등해 큰 손실을 입자 계약의 불공정성 등을 주장하며 은행을 상대로 무더기 소송을 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