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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5월 3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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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랜드 CB “적법한 주주 배정… 배임혐의는 없어”
삼성SDS BW “주식 3자배정으로 회사에 손해 끼쳐”
법관들 의견 갈려 “무죄” “유죄” 팽팽… 별도의견 포함 6대5
대법원이 29일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과 관련한 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과 전현직 임원들에게 최종적으로 무죄 판단을 내림에 따라 삼성의 경영권 편법 승계 논란은 종지부를 찍게 됐다. 그러나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 발행 부분이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됨에 따라 이 전 회장으로서는 앞으로 재판을 더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 경영권 편법 승계 논란 일단락
이 전 회장이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에게 그룹 지배권을 편법 승계했다는 논란을 빚어온 에버랜드 사건의 재판은 두 갈래로 진행돼 왔다. 하나는 2003년 12월 서울중앙지검이 에버랜드 경영진이었던 허태학 박노빈 전 사장을 배임 혐의로 기소한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지난해 4월 조준웅 특별검사가 이 전 회장을 기소한 사건이다.
피고인은 다르지만 사건 내용은 똑같다. 허 전 사장 등은 1996년 11월 에버랜드 전환사채 99억 원어치를 발행한 뒤 3억 원어치만 주주였던 제일제당에 배정하고 나머지 실권주 96억 원어치를 이사회 결의를 통해 이 전무 등 이 전 회장의 자녀들에게 배정했다. 에버랜드는 이 전무 등이 제시한 CB에 대해 에버랜드 주식을 주당 7700원씩 계산해 모두 125만4000여 주를 배정했다. 당시 에버랜드 주식은 주당 8만5000∼23만 원으로 평가됐고 가장 낮은 거래액인 8만5000원을 적용해도 회사에 969억 원 상당의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 검찰의 논리였다. 지난해 4월 특검도 같은 논리로 이 전 회장과 임원들을 기소했다.
그런데 항소심 결과는 서로 달랐다. 허, 박 전 사장은 유죄였고 이 전 회장은 무죄였다. 결국 대법원은 허, 박 전 사장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하고, 이 전 회장에게 무죄를 확정하는 것으로 똑같은 결론을 내렸다. 에버랜드 CB 저가 발행을 통한 경영권 승계가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최종 정리한 것이다. 그러나 2003년 검찰이 허, 박 전 사장이 아니라 중앙일보 제일모직 삼성물산 등 CB 인수를 포기한 법인 주주 대표들을 기소했다면 결과는 달랐을 거라는 해석이 많다. 당시 법인 대표들이 주가가 오를 것이 뻔한 에버랜드 주식 인수를 포기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의도에 주목했다면 배임 혐의를 좀 더 명확하게 입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에버랜드 사건에 대한 무죄 판단은 심리에 참여한 대법관 11명 가운데 6 대 5로 가까스로 결론이 났다. 29일 대법관별로는 양승태 김지형 박일환 차한성 양창수 신영철 대법관이 무죄 의견, 김영란 박시환 이홍훈 김능환 전수안 대법관이 유죄 의견을 각각 냈다. 양승태 대법관은 별도의 의견을 냈는데, 취지는 “배임은 아니다”라는 무죄 의견이었다.
삼성그룹은 공식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안도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삼성 관계자들은 사견을 전제로 “이제는 ‘기업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반면 조준웅 특검은 “에버랜드는 실질적인 제3자 배정 방식이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다”라고 말했다.
○ 삼성SDS, 주주와 회사에 손해
대법원은 에버랜드 사건과 SDS 사건을 다르게 판단했다. SDS의 BW 저가 발행 배임 혐의에 대해 항소심의 무죄 판결을 뒤집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에버랜드는 CB를 기존 주주들에게 배정했지만 주주들이 이를 포기해 이재용 전무가 인수한 반면 SDS는 BW를 기존 주주를 건너뛰고 이 전무에게 바로 넘겼다는 것이다. 에버랜드의 경우 ‘주주 배정 방식’을 따랐다면 SDS의 경우 ‘제3자 배정 방식’에 의한 것으로 판단했다.
CB와 BW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회사가 자본을 끌어들여 규모를 키우기 위해 발행하는 회사채라는 점에서 같다. 대법원의 판단에 따르면 회사가 회사채를 발행해 자본을 끌어들여 회사 규모를 키운 것은 회사에 이익이 생긴 것은 아니다. 자본금 1억 원이던 회사가 회사채를 발행하고 이를 주식으로 바꿔서 2억 원 규모의 회사가 됐다고 해서 회사에 이익이 생겼다고 볼 수 없는 이치와 같다. 그러나 삼성SDS처럼 회사채를 기존 주주들에게 배정하지 않고 제3자(이재용 전무)에게 배정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애초 회사 지분이 없었던 이 전무가 회사채 인수를 통해 주식을 취득하면 회사로부터 지분을 새로 매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 이때 주식 취득 가격이 지나치게 싸다면 애초 권리를 빼앗긴 기존 주주와 회사 모두 손해라는 것이다.
이 전 회장은 서울고법이 다시 심리할 파기환송심에서 어떤 판결을 받을지 알 수 없다. 대법원은 이날 SDS 사건 부분을 파기환송하면서 공정한 BW 인수가격과 실제 BW 인수가격의 차액과 발행 주식의 수를 곱해 손해액을 다시 계산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손해액이 얼마인지에 따라 이 전 회장은 1심 때처럼 면소 판결을 받을 수도 있고 유죄 판결도 가능하다. 1심은 신주 발행 후 주식 가치를 9192원으로 보고 계산해 손해액이 아무리 많아도 50억 원이 넘지 않는다고 보고 면소 판결을 내렸다. 배임액이 50억 원이 넘지 않으면 공소시효는 2006년 2월에 이미 지난 것이어서 지난해 4월 특검이 기소한 것은 처벌할 수 없다. 특검은 당시 주식 가치를 5만5000원으로 산정해 기소했다. 주당 적정가는 9192원과 5만5000원 사이에서 결정된다.
삼성 측은 “서울고법이 SDS 사건을 다시 재판하면 이 전 회장이 또 법정에 나가야 하는 것으로 안다”며 “이 전 회장의 건강 문제 등을 고려하면 심란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