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저가 외국계 호텔이 독차지
특급위주 토종업체는 구경만
15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의 호텔 이비스 앰배서더 명동점.
이곳은 ‘작은’ 일본이었다. 호텔 로비는 일본 여행객의 수다 소리로 가득 찼고, 로비 한쪽에는 일본 여행객들이 맡기고 간 캐리어 수십 개가 있었다. 안내 문구 하나하나에 일본어가 병기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40대 일본인 여성은 “가격이 특급호텔에 비해 훨씬 저렴한 데다 명동이라는 위치가 특히 맘에 든다”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환율 상승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밀려들고 있는 요즘, 외국계 비즈니스호텔 체인들이 관광객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고급호텔 못지않은 서비스, 10만 원대의 저렴한 가격이 외국 관광객 공략에 주효한 것이다.
서울과 인천 등지에 8개 호텔을 갖고 있는 미국계 비즈니스호텔 체인 베스트웨스턴의 올해 서울시내 객석예약률은 84∼93%. 작년에 비해 약 10%포인트 뛰었다. 일본인 관광객의 비중도 급격히 늘어 이들이 전체 손님의 80%를 넘게 차지하는 곳도 있다. 프랑스의 세계적 호텔체인 아코르사의 중저가 호텔 ‘이비스(IBIS)’도 잘 알려진 브랜드 이미지와 평균 11만8000원의 저렴한 숙박료로 지난해에 비해 30%대의 매출신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이비스 앰배서더 명동점은 환율 상승으로 관광객이 몰리기 시작한 지난해 9월부터 예약률이 거의 100%에 육박한다. 명동점의 이창영 팀장은 “특급호텔을 부담스러워하는 관광객들이 인지도 있는 비즈니스호텔을 많이 찾는다”며 “최근에는 워낙 손님들이 몰려 적어도 한 달 전에는 예약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토종’ 숙박업계는 이 같은 비즈니스호텔 열풍을 눈뜨고 구경만 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 제대로 된 토종 비즈니스호텔은 거의 없는 실정.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금기용 연구원은 “서울의 숙박시장은 중저가 호텔이 없이 하룻밤에 30만여 원의 숙박료를 내야 하는 비싼 특급호텔이 대부분인 기형적인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중저가 비즈니스호텔 육성을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7년에는 관광공사가 인증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서울시가 후원하는 ‘베니키아(BENIKEA·한국 최고의 밤)’라는 중저가 비즈니스호텔 체인이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베니키아’는 제대로 운영되지 못한 채 유명무실해졌다. 베니키아 홈페이지는 현재 ‘새 단장을 위해 서비스를 중단한다’는 문구만 남긴 채 2개월째 문이 닫혀 있다. 한국관광공사 측은 “실질적으로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시가 2007년 야심 차게 도입한 ‘이노스텔’ 역시 당초 300개점 오픈을 목표로 했으나 현재 운영되고 있는 곳은 80여 개에 불과하다. 그마저 운영 중인 곳도 “모텔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비판에 시달린다. 금 연구원은 “기본적으로 서비스, 시설, 가격 면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데 실패한 데다 차별화되는 이미지를 각인시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토종’ 숙박업계에도 희소식은 하나 있다. 롯데호텔이 10일 서울 마포에 중저가 ‘롯데시티호텔 마포’를 개장한 것. 15만 원 선의 가격과 특급호텔 못지않은 넓은 객실로 무장한 시티마포는 앞으로 외국계 비즈니스호텔 체인들과 본격적인 경쟁을 벌여나갈 계획이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