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캅 한은’ 탄생? 재정부 - 금융위 반발로 산넘어 산

  • 입력 2009년 3월 26일 02시 58분


경제동향간담회 중심에 한은 총재 25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은행에서 열린 경제동향간담회에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운데)가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경제동향간담회 중심에 한은 총재 25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은행에서 열린 경제동향간담회에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운데)가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4월 임시국회에서 개정을 추진키로 한 한국은행법의 핵심은 한은에 금융회사 조사권을 주는 것이다. 한은법 개정과정에서 금융제도 전반에 대한 개편 논의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일각에서는 “다른 현안도 많은데 굳이 지금 한은법 개정이 필요한가”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하지만 재정위는 지금 같은 위기 상황을 오히려 한은의 역할 확대를 포함한 금융정책 및 감독체계 개편에 대해 논의할 적기로 보고 있다.》

“물가에만 매달려선 안돼” 권한-책임 강화

‘시어머니’ 늘면 금융사들 부담 커질수도

▽금융제도 개편=한은은 1999년 금융감독원 출범 이전까지만 해도 은행감독원을 통해 일반 시중은행과 외국은행 지점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외환위기 이후 은감원이 보험감독원, 증권감독원과 통합돼 금감원으로 떨어져 나가면서 한은의 금융시장 장악력은 크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금융위기로 중앙은행의 역할이 중시되면서 한은의 권한 확대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해 미국 영국 등 각국 중앙은행들은 고유의 발권력을 이용해 시중에 유동성을 쏟아 부었다. 반면 통화신용정책만 맡도록 돼 있는 한은은 ‘물가 안정’에만 매달린다는 지적이 많았다. 금융회사나 영리기업에 대한 한은의 여신은 현행법으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중대한 긴급사태’(65조)나 ‘심각한 통화신용 수축기’(80조)일 때만 여신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사실상 엄격히 제한해 놓은 상황이다. 이런 족쇄를 풀어주면서 한은이 돈을 어디에, 얼마나 집어넣을지 자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조사권을 주겠다는 것이다. 재정위 관계자는 “한은이 은행자본확충펀드에 10조 원을 출자하지만 정작 해당 은행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다”며 “한은이 금융 위기에 적극 대처하도록 하려면 책임과 권한을 동시에 줘야 한다”고 말했다.

재정위는 한은의 역할 확대를 계기로 금융제도 전반에 대한 수술도 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예금보험공사나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주택금융공사 등 금융정책을 수행하는 기관들을 금융위원회 산하에서 기획재정부 산하로 옮기는 정부조직법 개정안도 준비하고 있다. 서병수 재정위원장은 “금융위의 업무조정, 국제금융과 국내금융 담당 기관의 재통합 여부, 예보 등 정책금융기관의 상위 부처 조정 등의 문제가 거론될 것”이라며 “한은법 개정은 금융제도 개편 논의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등 떠밀린 정부=재정부와 금융위는 이 같은 국회의 움직임에 부정적인 생각이다. 23일 재정위 경제재정소위가 주최한 비공개회의에서 한은의 역할 확대라는 원칙론에는 동의했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재정부와 금융위의 권한 축소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감독 주무부처인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은 한은에 단독 조사권을 주고 감독기관을 재편하는 문제와 관련해 “정책 처리 순서에서 뒤로 밀려 있는 사안”이라며 적극 반대한다.

재정위 소속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은 “한은에 금융안정 수단을 주고, 금융시장 전반에 대한 거시 감독기구가 필요하며, 정부와 한은 간 정보공유가 필요하다는 데 정부도 동의하고 있다”면서 “정부와 한은의 영역 다툼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국회가 주도권을 쥐고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위는 “한은이 현행 법체계 내에서도 금융시장 안정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며 여전히 반발하고 있다.

또 현재 금융회사들이 금감원과 감사원의 조사를 받는 상황에서 한은에 다시 단독 조사권을 줄 경우 금융회사 부담이 커진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어 부처 간 이해조정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 금융위기 계기 외국도 중앙은행 기능 확대

英 은행퇴출 결정-CP매입권한 부여

美 FRB 의장이 구제금융 집행 점검

영국 미국 등 글로벌 금융위기로 홍역을 앓고 있는 주요 선진국도 중앙은행의 권한을 확대해 금융시장 안정을 도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영국 의회는 중앙은행인 영국은행(BOE)의 설립 목적에 ‘금융 안정’을 추가하는 내용의 영국은행법안을 공포했다. 기존 법은 영국은행의 기능을 통화 정책의 수립과 결정으로 제한했었다.

법안 공포에 따라 영국은행 안에 금융안정 정책 업무를 지원하는 금융안정위원회(FSC)를 설치하는 등 조직이 확대됐다. 또 특별정리제도를 도입해 은행이 파산할 때 영국은행이 퇴출 방식과 구조조정 개입 시기 등을 주도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지급결제 시스템 감시 기능을 법제화해 영국은행이 금융안정 책임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영국 정부는 최근 영국은행에 채권과 기업어음(CP)을 매입하는 데 500억 파운드(약 100조 원)를 쓸 수 있는 권한을 주기도 했다.

미국은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경제 전반의 리스크를 관리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티머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FRB가 통합적인 감독 권한을 행사하길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재무부가 검토 중인 금융개혁안에 따르면 FRB는 비은행권에 대한 검사 권한, 지급결제시스템에 대한 규제 및 감사 등의 권한을 갖게 돼 시장안정 규제기구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지난해 말 금융시장 안정화 조치의 집행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미 정부가 설치한 금융안정감시위원회(FSOB)의 위원장을 FRB 의장이 맡은 것을 통해서도 FRB의 권한이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도 중앙은행으로 하여금 비은행권까지 관할하도록 해 금융시장 안정 기능을 수행토록 하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