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 받을 줄 꿈에도 몰랐죠”

  • 입력 2009년 3월 20일 03시 00분


17일 서울 마포구 도화동 서부고용지원센터에서는 중장년뿐만 아니라 20, 30대 구직자들도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몰려들면서 대기실이 가득 찼다. 최근 경기침체로 도산하는 중소기업이 늘면서 5년차 이하의 젊은 실직자도 증가 추세다. 이훈구 기자
17일 서울 마포구 도화동 서부고용지원센터에서는 중장년뿐만 아니라 20, 30대 구직자들도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몰려들면서 대기실이 가득 찼다. 최근 경기침체로 도산하는 중소기업이 늘면서 5년차 이하의 젊은 실직자도 증가 추세다. 이훈구 기자
20, 30대 비정규직 해직자 몰려

■ 고용센터 지급 창구 르포

17일 오후 1시 반 서울 마포구 도화동 서부고용지원센터 실업급여 지급창구.

업무 개시까지는 30분이 남았지만 오후부터 새로 발행된 대기표는 벌써 42번째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만석인 대기석에 앉지 못한 사람들은 삼삼오오 구인광고 게시판 앞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메모했다. 대부분 단순 노무, 서비스, 일반사무직을 모집하는 광고로 계약직에 연봉은 1500만 원 미만이었다.

이날 실업급여 신청을 위해 서부고용지원센터를 찾은 구직자들 가운데는 20, 30대 젊은이들의 행렬이 눈에 띄었다. 최근 경기침체로 중소기업 도산이 늘면서 5년차 이하 실직자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30세 미만 실업급여 신청자가 지난해 1월 1만7557명에서 올해 1월 2만3348명으로 33% 증가했다. 30대 신청자도 39%나 늘었다.

구로공단의 한 공장에서 운반 일을 하던 한모 씨(25)의 경우에는 재고가 늘면서 공장 사정이 어려워져 10명이던 직원이 4명으로 줄어들자 일을 그만둬야 했다. 최소인원만 남기다 보니 숙련공이 필요했고 막내였던 그는 해고의 칼바람을 피할 수 없었던 것. 그와 비슷한 또래의 20대 직원 2명도 함께 회사를 나와야 했다.

비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들은 불황에 더욱 취약하다. 경복궁에서 수문장 교대식 재연행사 요원으로 일했던 최모 씨(26)는 올해 재계약에 실패했다. 문화재보호재단에서 재계약 인원을 줄인 데다 지원자가 크게 늘면서 경쟁이 치열해진 것.

최 씨는 “비정규직이다 보니 매년 재고용의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며 “정규직으로 일해 보고 싶지만 학력이 짧아 큰 기대는 안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학력자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미술사 박사학위 소지자인 오모 씨(31·여)는 한 미술사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다 직장이 감원 1순위 기관으로 지목되면서 결국 퇴직했다. ‘돈 안 되는’ 분야의 고학력이라 실직의 그림자를 피해 갈 수 없었던 것. 오 씨는 남편이 돈을 벌고 있긴 하지만 곧 출산을 앞두고 있어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고용정보원 주무현 연구위원은 “외환위기 때만 해도 50대 이상의 나이 많은 직원들이 우선 퇴출됐지만 이후 노동시장 유연화 바람이 일면서 신규 고용된 젊은 근로자들의 고용안정성이 크게 약화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불황이 닥치니 20, 30대가 해고에 취약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칼바람을 맞은 20, 30대들에게는 종잣돈 역할을 하는 실업급여가 큰 힘이 된다.

정보통신업체에 다니다 1월 퇴직한 권모 씨(31)는 부동산 공부와 직장 일을 병행하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자 공부를 택했다. 권 씨는 “사이버대학 강의도 들어야 되고 공부도 해야 하는데 생활비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면 공부에 집중이 안 된다”며 “그나마 실업급여가 있어서 일정기간은 생계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대학원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한 시중은행 창구 계약직으로 일해 온 김모 씨(26·여)는 대학원에 입학해 장학금을 받기 전까진 실업급여로 생활할 계획이다.

김 씨는 “2년 전 대학을 졸업할 때만 해도 이런 곳에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남들 다 받는 돈 나도 챙겨야 한다는 생각을 이렇게 태연하게 하고 있는 게 조금 서글프다”며 “이렇게라도 희망을 찾아갈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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