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원 송금땐 ‘中 한달봉급’ 손해…차라리 정기예금”

  • 입력 2008년 12월 1일 02시 59분


고환율 시대가 바꿔놓은 사회상

“힘들게 번 돈 환율 내려가면 보낼것”

외국인근로자 송금액 20%이상 감소

해외신혼여행 잇단 포기 국내로 U턴

남해안 골프장들은 ‘때아닌 성수기’

방문연구 가려던 교수들 비용 고민

토플 응시생 수수료 올라 시험 연기

일본산 청주 수입 급감에 재고 바닥

매출 줄어든 면세점 ‘환율할인’ 나서

지난주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원-엔 환율은 1600원대까지 치솟는 등 원화가치 하락으로 인한 다양한 현상들이 사회 각 부문에서 나타나고 있다.

○ 본국 송금 멈춘 외국인 근로자

2년 전부터 매달 국내에서 번 돈 80만 원을 본국에 송금해 온 중국동포 Y(22) 씨는 최근 송금을 중단하고 그 대신 시중은행의 정기예금에 가입했다. 나중에 환율이 내리면 그동안 모아놓은 원화 봉급을 한꺼번에 송금할 생각이다.

최근 환율 급등으로 국내에서 땀 흘려 벌어들인 돈을 본국에 보낼 때 위안화로 환산한 송금액이 확 줄어들기 때문. 만약 한국에서 100만 원을 송금하면 중국 현지인의 한 달 월급에 버금가는 1500∼2000위안씩 손해를 보는 꼴이다.

양재도 외환은행 반월공단지점장은 “동남아 파키스탄 출신 외국인 근로자가 많은 이 지역에서 외국인들의 본국 송금액이 8∼9월에 비해 20%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 제주도에 붐비는 신혼부부들

10월 중순 결혼식을 올린 이모(33) 씨 부부는 신혼여행으로 목포와 부산, 강릉을 잇는 해안도로를 따라 일주일간 드라이브를 다녀왔다. 이 씨는 “해외로 나가라는 권유도 많았지만 환율 상승과 유가 하락 때문에 국내 자동차 여행이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했다.

롯데관광여행사에 따르면 10월부터 최근까지 제주도 여행에 대한 문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30% 늘었다. 신혼부부들의 발길이 거의 끊겼던 김포공항에도 최근 주말마다 꽃 장식을 한 승용차들이 자주 눈에 띄고 있다.

○ 남해안엔 골프 관광객

동남아나 중국 골프여행을 떠났던 사람들은 최근 남해안 주변으로 몰리고 있다. 통영 남해 여수 광양 순천 등지의 골프장은 그린피가 10만 원대 초반으로 해외보다도 싸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외국행 항공 여객의 수하물 중 골프채의 수가 대폭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방학 때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1, 2개월씩 외국에서 시간을 보내곤 하던 대학교수들도 이번 겨울방학만큼은 국내에서 지내는 사례가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 K대의 한 공과대학 교수는 “단기간 해외에 체류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6개월 이상 안식년을 맞아 외국으로 가던 교수들도 최근 환율 흐름에 적잖이 당황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 면세점에 ‘환율할인’도 등장

올 9, 10월 롯데백화점 전체 점포와 명품관 ‘애비뉴엘’의 명품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0%대의 성장을 했다. 소비자들이 외국이나 면세점에서 구입했던 물건을 이제 백화점에서 사는 것. 이 백화점 관계자는 “백화점은 환율이 올라도 수입 원가를 기준으로 했던 가격을 유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면세점들은 ‘환율 할인’을 들고 나왔다. 예컨대 원-달러 환율이 1200∼1300원 대면 15∼20%, 1300원을 넘어서면 20∼30% 추가 할인을 적용하는 방식. 면세점에서 환율에 연동해 할인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해외에서 한국인 여행객을 안내하던 한국인 가이드들은 여행객이 없어 울상이다. 한국인 쇼핑객들로 붐볐던 해외공항 면세점에선 급등한 환율 때문에 한국말을 좀처럼 듣기가 힘들다.

○ 일본 상품이 가장 큰 타격

1, 2년 전 엔저(円低) 시대 때 큰 인기를 끌었던 일본 상품들은 외면을 받고 있다.

서울 중구의 S일식주점의 메뉴판엔 겟케이칸(月桂冠), 오도코야마(男山) 등 10여 가지 일본 수입 청주가 쓰여 있지만 이 중 절반은 주문해도 재고가 없다. 엔화 환율이 뛰면서 수입상들이 공급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최근 인터넷 쇼핑몰에서 한국산 기저귀는 일본산에 비해 개당 100원 가까이 싸다. 주부 정모(33) 씨는 “그래도 일본산 기저귀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는 주부들은 엔화가 계속 오를 것에 대비해 사재기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은행원 이모(30) 씨는 환율 상승으로 토플(TOEFL) 시험 응시를 미루고 있다. 요즘 관련 인터넷 카페에도 응시료가 너무 올랐다고 불평하는 글이 적지 않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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