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웃은 원화… 실물경제가 변수

  • 입력 2008년 10월 14일 21시 15분


14일 오후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의 얼굴에 오랜 만에 화색이 돌았다. 이달 2일부터 환율이 나흘 새 208원이 오르는 비상 상황에 대처하며 파김치가 된 그에게 이날 환율이 30원 떨어져 나흘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는 보고가 들어온 것.

최 국장은 "해외 상황을 지켜봐야하겠지만 돌발 상황이 없는 한 환율은 안정세로 돌아설 것"이라며 "급등락이 일단락되면 직원들과 자주 가던 중국 식당에서 회식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 국장이 직원들과 맘놓고 회식할 수 있는 날은 언제가 될까. 외환 전문가들은 세계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이 풀리고 4분기(10~12월) 경상수지 흑자 전환이 확인되는 시점을 가능성이 있는 '회식일'로 꼽고 있다.

서울 외환시장을 짓눌렀던 미국발 금융위기의 과도한 충격과 공포는 일단락됐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세계 금융위기의 여진과 돌발 악재에 환율이 출렁거릴 수 있기 때문이다.

1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는 미국 달러화에 대한 환율은 나흘째 하락세를 이어가며 지난달 말(1207원)에 근접한 1208원으로 내렸다. 이달 초 상승분을 반납한 것이다. 이는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터진 지난달 16일 이후 최장기 하락이다.

외환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과도한 불안 심리를 떨치고 숨고르기에 들어갔다고 보고 있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 등 가시적인 조치가 나오면서 외화자금 시장 안정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고, 환율 하락을 예상하는 수출업체의 매물이 나오고 있다.

최 국장은 환율 하락의 원인으로 △선진국 증시가 호전됐고 △외국인들이 국내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으며 △자산운용사의 선물환 매입이 줄었고 △기업들이 보유한 외환을 외환시장에 내놓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현재 원-달러 환율은 '리먼 사태' 직전인 지난달 12일(1109.1원)보다는 98.9원 높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제시한 균형 환율(1002원), 삼성그룹의 내년도 경영계획의 기준 환율(1040원)과도 60~100원 정도 차이가 난다.

최 국장은 "10월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면 환율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에 맞게 안정될 것"이라며 "민간 연구소들이 전망한 환율 수준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투자증권은 국제 유가 하락으로 4분기(10~12월) 60억 달러 이상의 무역흑자를 내고 대기업의 달러 매도 가능 금액이 약 240억 달러 정도 된다는 점을 근거로 환율 하락을 점치고 있다.

박형중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1980년 이후 한국은 외환위기, 신용카드 사태, 현재의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 차례 환율 급등 시기를 겪었다"며 "환율이 저평가됐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환율이 빠르게 하락한 선례를 볼때 최근 환율이 연말에 1100원 대로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아직 변수는 남아 있다. 연 0.5%의 저금리로 돈을 빌려 고수익 외화자산에 투자하며 국제 금융시장의 자금줄 역할을 한 일본의 '엔 케리 자금'이 돌아오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지만 아직 본격 회복 시점은 아닌 데다 내년 실물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몇 분기 동안 4%대 미만의 성장이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엔-달러 환율은 이날 2.17원 올랐다.

오석태 한국씨티은행 이코노미스트는 "1200원 선에서 공방을 벌일 것으로 본다"며 "실물 경제에 대한 우려감이 있어 1150원 부근에서 하락을 멈출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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