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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8월 5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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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시장개입으로 환율 쏠림현상 일단 진정 성공
“지난달 200억 달러 투입 반짝 효과만” 일부 회의론
전문가들 “개입 장기화땐 ‘달러 곳간’ 부실 등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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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율 전쟁’ 한 달…200억 달러 ‘투하’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지난달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환율 안정을 위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구두(口頭) 개입에 나선 이후 시작된 ‘환율과의 전쟁’이 7일로 한 달을 맞는다.
7월 중 외환보유액은 105억 달러 감소했지만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7월 한 달 동안 정부와 한은 등 외환 당국이 200억 달러 안팎을 시장에 판 것으로 추정한다.
당국은 시장의 거래가 뜸한 점심시간 달러를 기습적으로 내다 파는 등 환율 시장에 공세적으로 개입했다. 이 때문에 딜러들은 점심시간에도 자리를 비우지 못하고 도시락을 먹으며 딜링룸을 지켰을 정도다.
정부의 대규모 달러 매도 개입이 지난달 4일 1050.40원까지 올랐던 원-달러 환율을 1020원대 미만으로 안정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게 시장 안팎의 평가다.
삼성경제연구소 장재철 수석연구원은 “1040∼1050원대 환율은 시장 수급 상황을 고려하면 분명히 과도한 수준으로, 정부가 때맞춰 강력한 개입으로 쏠림현상을 진정시키는 데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 환율 상승 가능성 높아
그러나 들어올 달러는 적고, 달러 수요는 늘어나는 등 시장의 ‘펀더멘털’이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개입이 장기화되는 데 대한 부담도 커지고 있다. 외환보유액 소진 우려는 물론이고,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계속 거둘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는 것이다.
유가가 안정세로 돌아섰지만 언제 다시 오를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고, 외국인들의 주식 매도금 환전 수요도 지속되고 있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들은 7월 한 달 동안 한국 증시에서 46조9221억 원을 순매도했다.
또 경상수지가 올해 10년 만에 적자로 돌아설 것이 확실시되면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이르면 8월 순채무국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는 등 ‘달러 곳간’을 안심할 처지도 아니다.
이런 전망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4일 원-달러 환율은 1일보다 달러당 2.80원 오른 1017.40원에 마감했다. 거래일 기준으로 3일 연속 상승(원화 가치는 하락)해 7월 22일(1016.60원) 이후 최고치로 오른 것. 7월 23일부터 시장에 내다 판 30억 달러어치(시장 추정)의 매도 개입이 허사가 된 셈이다.
한 외환 딜러는 “유가가 급격히 내리거나 글로벌 신용위기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한 환율은 조금씩 올라갈 것”이라면서 “정부의 개입이 장기화되면서 개입 효과에 의구심을 갖는 반발 매수세도 점차 늘고 있다”고 전했다.
○ 전문가들 “환율 수준, 시장에 맡겨야”
정부의 시장 개입에 적극 보조를 맞췄던 한국은행도 발을 빼는 듯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한은은 최근 ‘일본의 외환시장 개입 효과에 대한 논의’라는 도쿄사무소의 보고서를 통해 지속적 환율 개입에 대해 편치 않은 속내를 드러냈다.
이 보고서는 “1991∼2004년 중 일본 통화 당국의 환율시장 개입은 대규모 자금 투입에도 불구하고 효과가 제한적이었다”면서 “일본 경제학자들의 실증분석 결과 개입 당일 또는 2주 이내 환율에만 영향을 주는 단기적인 효과만을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9%를 기록한 상황에서 정부로서는 고(高)환율을 용인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물가 안정은 경제정책의 최우선 목표.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환율은 수입물가에 전가돼 전체 국민에게 전방위적인 영향을 준다”면서 “과도한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한 개입은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환율이 낮았을 때 모은 달러를 환율이 높을 때 팔았기 때문에 시장 개입으로 거둔 환차익도 무시 못할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부의 개입이 시장의 추세를 꺾는 것은 원칙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환율의 급변동을 막는 것은 옳지만 환율 수준 자체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기본으로 돌아갈 것을 주문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개입 기간이 길어져 효과가 줄어들면 정부에 대한 신뢰가 함께 떨어질 수 있다”면서 “환율이 오르면 수출이 늘어 경상수지가 개선되고, 달러가 풍부해져 환율이 다시 안정을 되찾는 시장의 메커니즘에 맡기는 게 옳다”고 말했다.
△자본시장을 개방한 상황에서 △거시경제정책의 독자성을 유지하려면 △환율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통화정책의 트라일레마(trilemma)’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박용 기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