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16분간 무려 22원 폭락…

  • 입력 2008년 7월 3일 19시 19분


“당국, 최대 40억 달러 투매”

2일 외환시장 마감 20분전인 오후 2시40분경, 각 시중은행의 딜링룸에서는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다. 이날 하루 종일 1040원대 후반에서 움직이던 원-달러 환율이 갑자기 수직 상승하기 시작한 것. 곧 이어 2시44분, 외환 딜러들의 모니터에는 1057원이란 가격이 선명히 새겨졌다. 이대로 장이 끝난다면 2005년 10월24일(1058.10원) 이후 2년 8개월여 만에 환율이 최고치로 마감될 상황이었다.

이 때 대반전이 시작됐다. 달러를 팔자는 주문이 집중적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순식간에 환율은 1035원(마감환율)까지 떨어졌다. 16분간 무려 22원이 폭락한 것. 환율 상승에 따른 물가급등을 막기 위해 당국이 올해 최대규모의 매도 개입을 한 결과였다.

●외환딜러들 "당국, 최대 40억 달러 투매"

이날 외환시장은 주가 폭락과 국제유가 상승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초반부터 환율 상승에 대한 기대심리가 컸다. 그러나 정작 시장에서는 당국의 매도 개입에 대한 우려 때문에 매도세와 매수세가 내내 치열하게 맞섰다. 좁은 범위 내에서 등락을 반복하던 환율은 장 막판 당국이 엄청난 양의 '달러 폭탄'을 투하하면서 마침내 급전직하했다.

한 외환딜러는 "장 막판 상황은 워낙 순식간에 진행됐다"며 "외환당국이 평소엔 약간씩만 개입하다가 저가(低價) 매수세가 들어오면 이내 손을 뗐지만, 이날만큼은 마음먹고 끝까지 투매한 것 같다"고 상황을 전했다.

국민은행 트레이딩부 노상칠 팀장은 "환율은 보통 4, 5원 밀리면 다시 반등하는 패턴을 보이는데 2일은 달랐다"며 "환율이 조금 내려가자 저점인 줄 알고 달러를 샀다가 손해를 보는 경우도 많이 보였다"고 말했다. 이들 중 일부는 매수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손절매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는 환율 하락폭을 더 키운 요인이 됐다.

정부는 외환시장의 개입 여부나 규모에 대해 철저히 비밀에 붙이고 있지만 외환 딜러들은 이날 당국이 두 세 개의 시중은행을 통해 30억~40억 달러를 팔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딜러들은 "물가잡기에 나선 당국이 이날만큼은 독하게 마음을 먹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시장에서는 장 막판에 거래량이 폭주하면서 데이터 처리가 지연돼 마감환율이 장이 끝난 지 약 5분 뒤에야 고시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환율 안정효과 있을지 의문"

최근 정부의 경제정책방향이 성장에서 물가안정으로 돌아선 후 외환당국은 때때로 환율 급등을 막기 위해 매도 개입을 해왔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물가가 함께 오르고, 소비자물가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매도량은 10억 달러가 안 되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국무회의에서 "국정 목표를 물가 안정에 둬야 한다"고 강조한 이후 당국의 투매 규모는 더욱 커졌다. 2일 당국의 개입은 "정부의 물가안정에 대한 의지를 의심하지 말라"는 신호를 시장에 준 셈이었다. 특히 정부는 이날 하반기 경제운용 방향을 발표하면서 물가안정에 힘쓰겠다고 재차 밝혀 환율 방어를 계속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 같은 정부의 개입을 두고 일부에서는 "외환보유고만 축낼 뿐 정작 의도했던 환율 안정 효과는 없다"는 부정적인 의견도 나온다. 한 외환딜러는 "시장에서는 정부가 달러를 내놓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개입이 시작되면 싼 값에 달러를 매입해 환율이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2일도 당국의 개입으로 환율이 1035원까지 내려왔지만 바로 다음날인 3일 10원이 급등하며 이내 1045원으로 되돌아왔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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