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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26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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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9시 대구의 ‘강남’으로 불리는 수성구 A아파트. 완공된 지 1년이 지났지만 불이 켜진 집은 손에 꼽을 정도다. 악성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이 많은 탓이다. 이 아파트 주민 C 씨는 얼마 전까지 관리소장을 맡았다. 주인 없는 집들 탓에 온갖 문제가 생기자 주민이 직접 나선 것. 그는 “관리비를 낼 입주민이 부족해 전기료, 수도료 등 수천만 원이 연체돼 있다”며 “전기와 수도를 끊겠다는 통보까지 받았지만 해결책이 없다”고 울상을 지었다.》
건설업계는 공사가 끝났는데도 팔리지 않은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를 일반 미분양 아파트와 구별해서 ‘악성 미분양’ 아파트라고 부른다. 이런 악성 미분양 아파트가 지방에 넘쳐나고 있다. 준공 이후까지 한 채도 안 팔린 아파트가 있는가 하면 분양을 포기하고 전세 입주자로 새 집을 채우려는 곳도 늘고 있다.
25일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2월 말 기준으로 전국의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는 1만9948채다. 1년 남짓 새 50% 늘어난 규모로 이 가운데 99%인 1만8770채가 지방 아파트다.
분양대행업체 사장 L 씨는 “영업에 악영향을 줄까봐 건설업체가 공개하지 않은 미분양까지 포함하면 실제 준공 후 미분양은 정부 통계보다 50% 이상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 아파트는 완공됐는데 분양률은 ‘0’
24일 밤 부산 남구 B아파트는 92채 가운데 불이 켜진 곳이 한 집도 없었다. 지난해 완공됐지만 한 채도 안 팔렸기 때문이다. ‘유령 아파트’라는 말까지 나온다.
아무도 살지 않는 아파트라 상가도 텅 비어 있다. 3.3m²당 700만 원인 분양가는 인근 시세에 비해 높지도 않다. 지하철 역세권이고 수요층이 두꺼운 110m² 단일 면적이다. 그런데도 건설업체는 분양가를 내려 다시 분양해야 할 처지다.
인근 K아파트. 이곳도 지난해 완공됐지만 700여 채 중 20% 남짓만 입주했다. 주민 P 씨는 “단지 내에서 사람 구경을 하기 힘들다”며 혀를 찼다.
맞은편 D아파트는 주변 시세보다 3.3m²당 200만 원 정도 분양가를 내렸지만 찾는 사람이 없다. 분양사무소 관계자는 “설명할 것도 없고 공황 상태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부산시에 따르면 4월 말 기준 미분양 아파트는 1만3325채. 이 가운데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는 3145채다.
S건설 관계자는 “과잉공급이 미분양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사 중인 아파트 가운데 1만2000여 채가 미분양 상태여서 올 연말이면 준공 후 미분양이 지금의 두 배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 준공 후 미분양, “정부 통계의 2∼3배”
같은 시간 충남 천안시 용곡동의 전경도 비슷했다. 드문드문 빛이 새어나오는 아파트 아래에는 ‘분양 상담 문의’라는 플래카드가 잔뜩 걸려 있다.
아산신도시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더니 운전사가 대뜸 “사람은 없는데 아파트만 지으면 뭘 해. 그 많은 신도시에 누가 들어와 살 건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아산신도시 ‘진’ 공인중개사사무소 문미영 실장은 “이미 준공한 미분양 단지가 차라리 형편이 낫다”며 “지금 건설 중이면서 분양을 진행하는 아파트는 준공한 곳보다 미분양이 더 많다”고 말했다.
현지 부동산업계는 “정부 통계를 믿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국토부에 따르면 2월 말 기준으로 광주와 대구의 준공 후 미분양은 1078채와 974채다. 그러나 이 지역 중개업계는 실제 준공 후 미분양을 정부 통계의 2∼3배로 보고 있다.
D건설 관계자는 “시공사가 시행사로부터 공사비 대신 아파트로 떠안은 물량 등 드러나지 않는 미분양이 많다”며 “나쁜 소문이 나지 않도록 미분양 물량을 줄여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 분양 포기하고 전세로 전환
대구 달서구 성당동 S아파트. 3000채가 넘는 단지 곳곳에 ‘꾸며놓은 집’ 등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맡으려는 업체들의 플래카드가 보인다. 그러나 입주가 임박한 여느 아파트와 달리 인적은 드물다. 중개업계에 따르면 일반분양분의 80% 이상이 미분양으로 남았다.
시공사는 분양을 포기하는 대신 전세 입주자로 빈집을 채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런 아파트가 대구에만 3곳이다.
부동산114 이진우 대구경북지사장은 “수요자들이 집을 소유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새 아파트를 분양받거나 기존 아파트를 살 사람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전세금이 매매가격의 90%에 육박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대구 수성구 C아파트 90m² 시세는 1억1000만 원. 급매물로 내놓아도 살 사람이 없다. 그러나 전세로는 9500만 원을 주고서도 구하기 어렵다.
지역 중개업계는 악성 미분양의 원인으로 ‘면적의 수급 불균형’을 지적한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대구지역 미분양 아파트 1만6232채 가운데 69%인 1만1200채가 전용면적 85m² 이상 중대형 아파트다.
2004, 2005년 청약 열풍을 타고 건설업체들이 중대형 아파트만 잔뜩 공급했다가 낭패를 당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준공 후 미분양, ‘눈 덩이’ 증가 우려
회사원 김모(40·대구 수성구) 씨는 최근 무주택자가 됐다. 입주할 아파트의 시세는 분양가(5억2500만 원)에 비해 1억 원 남짓 떨어졌다. 잔금 등을 마련키 위해 살던 집을 팔려고 보니 기존 집값도 1년 새 1억 원 하락했다. 그는 “살던 집을 싸게 팔고 입주 예정인 아파트는 해약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당분간 집을 살 생각이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미분양 아파트가 어떻게 팔리겠나”라고 말했다.
이처럼 분양심리가 극도로 냉각되면서 현재 공사 중인 미분양 아파트(2월 말 현재 10만9704채) 가운데 상당수가 악성 미분양이 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부동산정보업체 관계자는 “다들 쉬쉬하고 있지만 공사 중인 미분양 단지들이 악성 미분양으로 남게 되면 경제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대구=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천안=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광주=김권 기자 goqu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