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력으로 영토확장… 46개 계열사에 사장은 8명 ‘작지만 강한 경영’
《‘거화취실(去華就實).’
‘겉치레를 피하고 내실을 지향한다’는 이 글귀는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이 오랫동안 내세워 온 기업 경영이념이다. 실제로 롯데그룹은 신 회장의 경영철학처럼 외형을 늘리기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데 더 힘써 왔다. 롯데그룹의 보수적인 성향도 이런 경영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그룹 덩치에 비해 모든 측면에서 너무 짜다”는 말도 심심찮게 듣는다.
조직 운영과 인사도 아주 보수적이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기준 자산 43조6000억 원, 연간 매출액 31조8000억 원으로 재계 서열 5위다. 부회장과 사장이 많은 다른 그룹과 달리 롯데그룹은 회장과 부회장이 각각 1명이고 그룹의 전체 사장도 8명밖에 안 된다. 46개 계열사 가운데는 부사장, 전무는 물론 상무나 이사가 대표이사인 기업도 있다. 이는 롯데가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한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롯데가 전통적인 내수기업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상황과 맥락을 같이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변화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 중국과 러시아 등 세계로 진출하는 글로벌 경영에 적극 나서는가 하면 금융산업 진출에도 적극적이다. 변화의 중심에는 신 회장의 둘째 아들로 차기 그룹 총수로 확실시되는 신동빈 부회장이 있다.
신격호 회장은 20대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과 한국에서 대기업을 일궜다. 1922년생으로 올해 만 86세인 그는 대기업 총수로는 보기 드문 1세대 현역 경영인이다. 그는 홀수 달은 한국에서, 짝수 달은 일본에서 경영 활동을 한다.
신 회장은 평일에는 계열사 보고를 주로 받는다. 주말에는 현장을 찾아 직원을 독려하는 일이 많다. 올해 초에는 각 계열사 대표들에게 “계열사 실정에 맞는 개혁 프로그램을 작성해 실천에 옮기라”고 주문했다.
신 회장이 내실을 강조해 왔다면 신동빈 부회장은 확장에 힘을 쏟고 있다. 1990년 호남석유화학에 상무로 입사한 그는 2004년 10월 롯데그룹 정책본부장에 취임해 롯데그룹 경영을 실질적으로 지휘하기 시작했다.
신 부회장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현대석유화학 2단지(현 롯데대산유화)와 케이피케미칼을 인수했고 최근에는 대한화재를 인수해 롯데손해보험을 출범시켰다.
유통업 영토 확장에도 그의 의지가 담겨 있다. 롯데그룹은 성장 잠재력이 큰 베트남, 러시아, 인도, 중국의 머리글자를 딴 ‘VRICs’ 진출 전략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롯데그룹 정책본부 부본부장인 이인원 사장은 ‘부자(父子) 경영’을 보좌하는 그룹의 핵심 리더 중 한 명이다. 1973년 호텔롯데에 입사한 그는 1987년 롯데쇼핑 이사로 자리를 옮기면서 유통업과 인연을 맺었다. 관리, 영업, 매입 등 백화점 경영의 ‘3대 요직’을 거친 뒤 지난해 롯데그룹 정책본부 부본부장에 올랐다. 신격호 회장의 의중을 파악해 계열사에 전달하고 신동빈 부회장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신동빈 부회장과 이인원 사장을 중심으로 하는 롯데그룹 정책본부가 그룹의 ‘사령탑’이라면 현장에는 각 분야를 이끄는 계열사의 전문 리더들이 있다.
이철우 롯데백화점 사장은 롯데백화점 기획 상무와 영업본부장, 롯데리아 대표, 롯데마트 대표를 거쳐 지난해 2월 롯데백화점 대표로 취임했다. 그룹 내 관리전문가로 통하는 그는 ‘직원 기(氣) 살리기’ 등 조직의 화합을 통해 성과를 이끌어 내려 노력하고 있다. 수시로 점포를 방문해 고객과 직원을 직접 만난다.
정범식 호남석유화학 사장은 1976년 호남석유화학 창립 멤버로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산증인이다. 엔지니어 출신인 그는 이론과 실무를 함께 갖춘 전문가로 꼽힌다. 학계와 산업계의 우수 공학인이 참여하는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이기도 하다. 지난해 호남석유화학 대표에 취임한 뒤 올해부터는 롯데대산유화 최고경영자(CEO)도 겸직해 롯데그룹의 석유화학 부문을 책임지고 있다.
이창배 롯데건설 사장은 호텔롯데와 롯데쇼핑 건설사업본부 전무, 롯데건설 관리본부장을 지낸 뒤 2004년부터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취임 이후 기획개발실을 판교복합단지PF(Project Financing)사업, 파주운정복합단지PF사업, 청라국제업무지구PF사업, 해운대관광리조트PF사업 등을 주관하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이광훈 롯데중국투자유한공사 사장은 롯데의 중국 내 식품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이 사장은 롯데그룹 식품 3사인 롯데제과와 롯데삼강, 롯데칠성음료에서 30여 년 근무한 식품분야 전문 경영인이다.
롯데그룹에는 대표이사 부사장도 많다.
보수적인 조직문화 때문에 다른 기업보다 직책은 낮지만 이들이 가진 경력이나 권한은 다른 기업의 대표이사 사장과 맞먹는다.
노병용 롯데마트 부사장은 롯데백화점 기획이사, 잠실점장, 판매본부장, 영업본부장을 거쳐 지난해부터 마트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안해 ‘아이디어 맨’으로 불린다. 롯데마트 직원들이 고객의 시선으로 쇼핑을 하고 불편한 점은 바로 개선하는 ‘장보기 캠페인’도 그의 아이디어다.
김상후 롯데제과 부사장은 1975년에 롯데제과에 입사한 이후 30여 년간 과자 시장을 지켜왔다. 상품 개발과 영업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 자일리톨 휘바껌, 드림카카오 초콜릿 등을 개발했다.
정황 롯데칠성음료 부사장은 이학(서울대 생물학과)도 출신으로 상품 개발로 음료업계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이후 마케팅과 영업에서 두각을 드러내 지난해 대표로 발탁됐다.
좌상봉 호텔롯데 부사장은 삼성그룹 비서실 출신으로 2000년 롯데그룹에 이사로 영입됐다. 롯데그룹 정책본부에서 신규 사업 추진 및 계열사 경영관리를 총괄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정책본부에서 운영실장을 거쳐 2월 호텔롯데 대표로 승진했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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