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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18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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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중공업의 자회사 두산엔진은 올 1분기(1∼3월) 통화옵션에서 무려 2070억 원가량의 평가손실을 봤다. 지난해 이 회사 당기순이익(1030억 원)의 두 배를 넘는 규모다. 두산엔진은 환율 하락에 대비해 통화옵션을 계약했지만 올해 초 원-달러 환율의 이상 급등으로 오히려 막대한 환차손을 본 것이다. 올해 초 환율이 급등하면서 최근 들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에는 두산엔진처럼 통화옵션 계약으로 손실을 봤다는 수출업체들의 리포트가 잇달아 접수되고 있다. 잘못 선택된 환 헤지(위험 회피)가 오히려 손실로 이어지면서 최근 들어 거래 규모가 늘고 있는 환 헤지 파생상품에 대한 우려와 경각심도 커지고 있다.》
○ 통화옵션 상품구조
코스닥 업체인 A사는 2006년 8월 한 시중은행과 녹인-녹아웃(KIKO) 옵션거래 계약을 했다.
KIKO 옵션은 계약기간 환율을 한 달 단위로 체크해 아래위로 일정한 범위에 있을 경우 기업은 시장가보다 높은 지정환율로 외화를 팔 수 있는 통화옵션 상품. 그러나 환율이 계약기간 지정한 범위 이하(녹아웃 배리어)로 한 번이라도 내려가면 계약이 무효가 되고, 환율이 급등해 상단(녹인 배리어)을 넘어설 경우 계약금액의 2, 3배를 시장가보다 낮은 지정환율로 팔아야 돼 기업이 손실을 입게 된다.
이 회사가 이 옵션을 처음 계약할 때만 해도 시장 환율이 달러당 960원대로 앞으로도 계속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난달 말 환율이 녹인 배리어를 넘어 1020원대로 급등하면서 A사는 수백만 달러를 시장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내다팔아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결국 이 회사는 이 건을 비롯한 여러 건의 통화옵션 계약으로 지난달까지 130억 원의 평가손실을 봤다.
이처럼 많은 수출업체가 최근 2년여 동안 지속된 환율 하락기에 유행한 KIKO 거래에서 주로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은행과 기업 간 책임 공방
수출업체의 이런 손실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수 있다. KIKO 옵션의 경우 은행들이 기업과 2, 3년짜리 장기 계약을 하는 일이 많다. 여기엔 과거 환율 하락이라는 대세를 믿고 환율 단기 급등의 가능성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기업들의 탓도 크다.
최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은행이 선량한 시장참가자를 오도하고 그것을 통해 돈을 벌었다”고 비판한 이후 은행들이 중소기업에 통화옵션 상품의 위험을 충분히 알려준 뒤 이 상품을 팔았는지 논란이 일고 있다. 사전 고지 문제를 놓고 은행과 기업 간에 소송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우리투자증권 임한규 파생상품담당 부장은 “은행이 ‘계약 이전에 기업에 상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게 없다’고 주장하지만 중소기업들은 비전문가이기 때문에 충분히 리스크를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옵션계약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임상규 금융감독원 파생상품팀장은 “KIKO 같은 파생상품은 은행들이 판매 전에 상품의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는지를 서면으로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