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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1일 02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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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분리 하반기부터 3단계 걸쳐 완화 추진
지주회사 전환 SK CJ, 증권사 문제 해결될듯
이명박 대통령은 31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한국이 금융 허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서둘러 금융분야의 각종 규제를 풀고, 관치(官治) 중심의 금융활동을 민간 주도로 바꿔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날 금융위의 업무보고 내용은 이런 대통령의 발언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 금산분리 3단계로 완화한다
정부가 발표한 금산분리 완화는 세 단계로 구성된다.
첫 번째 단계는 산업자본이 사모투자펀드(PEF)를 통해 은행 지분을 더 쉽게 소유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산업자본의 출자비율이 10%가 넘는 PEF는 금융자본으로 인정받지 못해 은행 지분 소유한도가 4%(의결권 있는 지분 기준)로 제한돼 있다. 금융위는 금융자본으로 인정받는 출자비율을 15∼20%로 올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산업자본은 단순 재무적 투자자여서 PEF나 은행의 경영 의사결정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이와 함께 정부는 국민연금 등 연기금을 금융자본으로 인정해 은행 지분을 4% 이상 소유하는 것도 허용할 방침이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PEF뿐 아니라 산업자본(개별 기업)의 은행 지분 소유한도를 현재의 4%에서 10% 정도로 높인다. 이 정도로 지분이 높아지면 기업이 은행 경영에 개입하는 이른바 ‘재벌은행’이 나타날 수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임승태 금융위 사무처장은 “1단계는 6월 말까지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연내 시행할 예정이며 2단계도 빠르면 1단계와 동시에 시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장기적으로 금융감독 당국의 역량이 충분해지면 은행 지분 소유에 대한 모든 사전적 규제를 없애고 대신 대주주 적격성 심사 등 사후 관리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 GE식 금융-산업 혼합그룹의 길 터
금융당국은 국내 보험, 증권사가 글로벌 플레이어에 걸맞은 ‘덩치’를 키우기 위해서는 지주회사 전환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다. 현재의 금융지주회사법은 보험, 증권을 은행과 동일한 잣대로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어 지주회사 전환이 원활치 못했다.
지금도 보험업법은 보험사가 제조업체 지분을 15% 미만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지만 지주회사로 전환할 때는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제조회사 보유지분을 모두 처분해야 한다. 현재 동부그룹은 동부생명이 동부증권 등 금융계열사 외에 동부건설 동부제강 등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이 규정이 바뀌면 동부그룹도 쉽게 지주회사로 전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관련 그룹들과 재계는 정부의 규제완화 방침을 환영하고 있다.
정부의 계획이 3단계까지 진행돼 금융과 산업자본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면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과 같이 금융과 제조업을 동시에 소유하는 ‘거대 금융-산업 혼합그룹’ 출현도 가능해질 것으로 금융계 관계자들은 내다봤다.
○ 일반 지주회사의 금융기업 보유 허용도 검토
금융위는 또 이날 제조업 중심의 일반지주회사가 금융 자회사 보유를 허용하는 방안도 공정거래위원회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비은행 금융지주회사에 제조업 자회사를 둘 수 있도록 하는 방안과의 형평성 때문이다.
현재 공정거래법의 지주회사 규정에 따르면 일반지주회사는 금융 자회사를 보유할 수 없으며 지주회사 전환 2년 안(추가로 2년 유예 가능)에 보유지분을 전부 매각해야 한다.
이에 따라 지난해 지주회사로 전환한 SK그룹, CJ그룹 등은 계열사인 증권사의 처리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또 동양메이저(옛 동양시멘트)를 지주회사로 만들려던 동양그룹은 동양메이저의 100% 자회사인 동양캐피탈에 걸려 주춤한 상태. 한화그룹의 지주회사 전환에서도 대한생명이 걸림돌이다.
금융위와 공정위 간 합의가 이뤄진다면 이런 문제들은 해결된다.
| 지주회사 관련 각 그룹들의 고충 | |
| 그룹 | 내용 |
| 한화 | ㈜한화가 보유하고 있는 대한생명 지분이 총자산의 50%를 넘으면 금융지주회사로 분류됨 |
| SK | 이미 지주회사로 전환해 조만간 SK증권을 팔아야 함 |
| CJ | 이미 지주회사로 전환해 조만간 CJ투자증권을 팔아야 함 |
| 동부 | 동부화재의 지주회사 전환을 원하지만 동부건설, 동부제강 등 비금융 자회사가 걸림돌 |
| 동양 | 동양메이저의 지주회사 전환을 원하지만 동양메이저의 100% 자회사인 동양캐피탈이 걸림돌 |
| 자료: 각 그룹 | |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삼성생명 상장 걸림돌 상당 부분 해소
삼성그룹 지주회사 전환 급물살 탈듯▼
재계에는 ‘금산분리 제도란 사실은 은삼(銀三)분리’라는 말이 있다. 현실적으로 삼성의 은행지배를 막는 제도라는 얘기다. 이날 금융지주회사법 개정 방침이 발표되자 금융가에서는 “삼성을 겨냥한 규제 완화”라는 말이 나왔다. 이번 조치로 삼성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린다. 또 삼성생명의 상장을 막던 걸림돌도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그룹 계열사들은 이건희 회장 일가→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의 복잡한 순환출자로 얽혀 있다. 금융회사와 제조회사의 지분 보유가 어지럽게 뒤얽혀 지주회사 전환이 쉽지 않았다.
현행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르면 지주회사 산하 자·손회사는 모두 금융기업이어야 하며 제조업체 지분을 2년 안에 모두 처분해야 한다. 삼성생명이 지주회사가 되면 전자, 물산의 지분을 팔아야 해 이들 기업에 대한 이 회장의 지배력이 줄어드는 것.
또 공정거래법에 따른 지주회사 규정은 삼성생명 상장에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현행 규정은 기업의 ‘총자산 대비 보유 유가증권 가치’가 50%를 넘으면 강제로 지주회사로 지정돼 지주회사의 요건에 맞추도록 돼 있다. 따라서 삼성생명이 상장하면 에버랜드가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이 시가로 평가되면서 이 규정에 해당돼 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로 바뀐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등의 지분을 팔아야 하는 것.
정부의 규제완화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되면 이런 장애물들이 대부분 제거된다. 그렇지만 삼성그룹의 지주회사 전환은 여전히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지주회사로 전환하려면 우선 순환, 상호출자를 정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의 주가 상승에 따른 양도소득세가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또 ‘지주회사는 상장된 자회사의 지분을 20% 이상 보유해야 한다’는 요건에 맞추기 위해 주식을 추가로 매집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주식시장의 한 관계자는 “지주회사로 전환할 경우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 중 5% 초과분에 대한 의결권 제한’까지 풀어준다면 삼성의 지주회사 전환에 상당한 인센티브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