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 카페]기업설명회 ‘택일의 경영학’

  • 입력 2008년 1월 14일 02시 57분


《기업들은 보통 1, 4, 7, 10월에 직전 분기 실적을 발표합니다.

기업설명회(IR·Investor Relations)라고 하죠. 이 같은 IR에도 회사 나름의 경영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LG필립스LCD는 8일 “15일(화)로 예정됐던 IR를 14일(월)로 변경한다” 공시했습니다.

이 회사는 그동안 둘째 주 화요일 (1월에는 셋째 주 화요일)에 IR를 해왔는데 갑자기 월요일로 옮긴 것입니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죠. 》

그 속사정은 뭘까요.

이번에 발표하는 LG필립스LCD의 지난해 4분기(10∼12월) 실적은 ‘영업이익 8000억 원’이 넘는 사상 최대 기록이 예상됩니다. 회사로서는 이런 뉴스가 언론에 크게 보도돼 투자자들에게 널리 알려지길 바라겠죠.

그런데 돌발 변수가 생겼습니다. 평소 ‘둘째 주 금요일’에 IR를 해오던 삼성전자가 IR 날짜를 LG필립스LCD와 같은 15일로 잡은 것입니다. LG필립스LCD의 IR 날짜 변경에는 ‘사상 최대 실적이 한국의 간판기업인 삼성전자의 IR 기사에 묻히는 게 싫다’는 전략이 담겨 있는 셈입니다.

지난해 10월 30일 KTF와 LG텔레콤의 3분기(7∼9월) 실적이 동시에 발표됐습니다. 통신업계에서는 “실적이 좋은 LG텔레콤이 날짜를 일부러 맞춘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돌았습니다.

실제로 LG텔레콤 관계자들은 IR 며칠 전부터 “2위 업체인 KTF보다 우리의 영업이익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주목해 달라”고 기자들에게 귀띔하고 다녔지요. 그래도 KTF의 영업이익이 56억 원 더 많긴 했지만 당시 많은 언론은 ‘LG텔레콤 웃고 KTF 울었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LG텔레콤으로서는 IR 택일(擇日)의 효과를 본 셈이죠.

삼성그룹의 한 전자 계열사는 지난해 7월 2분기(4∼6월) IR를 아예 취소했습니다. 대외적 이유는 ‘경비 절감’이었지만 당시 증권가에서는 “1000억 원대 적자를 잇달아 기록해 일종의 ‘유구무언(有口無言)’ 전략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나왔죠.

매분기 IR의 이면에 담긴 기업의 전략과 속사정을 곰곰이 따져 보면 어떨까요. 그 기업을 좀 더 잘 아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부형권 산업부 bookum90@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