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특본 뜨자마자 특검이라니” 허탈

  • 입력 2007년 11월 23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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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수사 앞으로 이렇게…”삼성 비자금 의혹을 수사할 검찰 특별수사·감찰본부의 대외 창구 역할을 맡은 김수남 인천지검 2차장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수사 앞으로 이렇게…”
삼성 비자금 의혹을 수사할 검찰 특별수사·감찰본부의 대외 창구 역할을 맡은 김수남 인천지검 2차장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욕적으로 수사를 시작하려는 마당에 허탈하게 됐다.”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여야 합의로 ‘삼성 비자금 의혹’에 대한 특검 도입이 합의되자 검찰 측은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검찰의 특별수사·감찰본부(특본)는 이날 ‘특수통’ 출신 팀장 3명을 선임하고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수사를 시작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특검 도입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수사 방향과 일정을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

▽“당혹스럽고 허탈하다”=검찰 주변에선 전날까지만 해도 “특검법 통과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았다. 청와대가 특검 반대 의견을 굽히지 않았고 대통합민주신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등 3당이 발의한 특검법안과 한나라당 안이 큰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법사위 소위에서 전격 합의 소식이 전해지고 23일 본회의 통과 가능성이 높아지자 검찰은 당황하는 기색이 뚜렷했다.

삼성 관련 수사를 전담할 특본에 유능한 검사를 대거 투입해 수사를 막 시작하려는 시점이어서 검찰의 아쉬움은 더욱 컸다.

대검의 한 간부는 “특본 구성 방침을 밝힌 뒤 고발인 측도 환영의 뜻을 밝혔고 검찰 외부에서도 기대가 컸다”며 “엄선된 수사 인력으로 강도 높은 수사를 하려던 상황에서 특검 도입은 검찰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라고 씁쓸해했다.

서울중앙지검의 중견 검사도 “검찰로서는 특본 설치가 제 살을 깎는 고육책이었다”며 “검찰을 믿어 줬어도 될 텐데 굳이 특검을 도입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다른 검찰 간부는 “합의된 특검법안을 보니 수사 대상이 너무 광범위해 정해진 기한 안에 특검이 밝혀내지 못한 의혹은 결국 검찰로 다시 넘어올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사안이 워낙 복잡한 만큼 수사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로 구성될 특검 수사팀의 효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검찰 내에는 “검찰 수뇌부에 대한 로비 의혹까지 제기된 마당이어서 어차피 검찰의 수사는 신뢰성에 한계가 있었다”며 특검 도입에 긍정적인 일부의 시각도 있다.

▽특수통 검사 특본 배치=특본은 이날 강찬우(45·사법시험 28회)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장, 김강욱(49·29회)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2과장, 지익상(46·29회) 서울북부지검 형사3부장 등 부장검사 3명을 팀장으로 선임하고 수사 진용을 갖췄다.

강 부장은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 의혹 부분을 맡고 김 과장과 지 부장은 각각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에 대한 수사를 벌이게 된다.

강 부장은 2003년 검찰이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사건과 관련해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인 허태학 박노빈 씨를 기소한 주임검사였다. 대검 중수3과장이었을 때에는 공적자금수사반장을 맡아 쌍용그룹 김석원 회장의 횡령을 적발해 구속 기소했다.

김 과장은 ‘국가정보원 불법 감청 사건’ ‘법조 브로커 윤상림 사건’과 지난해 터진 ‘법조 비리 사건’ 등 굵직한 사건을 수사했다. 지 부장은 ‘한보사건 재수사’ ‘옷 로비 사건’ ‘진승현 게이트’ 등 대형 사건에서 활약했다.

전체 인원은 박한철 본부장과 김수남 차장, 팀장 3명을 포함해 검사 15명과 대검에서 지원되는 계좌분석팀 회계분석팀 컴퓨터분석팀의 수사관 40여 명 등으로 구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본 활동 위축 불가피=이전까지 여섯 번의 특검이 실시됐을 때 검찰은 특검법의 규정에 따라 수사 자료를 모두 특검에 넘겨주고 수사를 중단했다. 따라서 특검이 활동을 시작하면 특본은 역할이 크게 줄거나 해체되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특검 활동 시작 전까지 검찰이 자체 수사를 진행해야 하는지에 있다. 23일 특검법이 통과돼 예정대로 발효되면 특검 임명 및 수사팀 구성 등 수사를 준비하는 데 한 달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김수남 특본 차장은 “특검이 도입될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 수사할 방침”이라면서도 “특검의 도입 취지를 존중해야 하는 측면도 있고, 특검을 위해서라도 가능하면 수사 성과를 낸 후에 넘겨줘야 하는 측면도 있다”며 고민을 내비쳤다.

재경 지검의 한 소장 검사는 “특검을 한다고 해서 검찰이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일종의 직무 유기”라며 “하는 데까지 해 볼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이 수사 결과를 내놓을 수 없고 특검이 수사 방향을 어떻게 잡을지 예상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특본이 당장 뭘 수사해야 하는지는 난감한 문제다.

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한 부장검사는 “수사팀이 바뀌면 사건을 보는 시각, 수사 방식이 모두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예를 들어 지금 검찰이 어딘가를 압수수색해도 특검 쪽에서는 전혀 관심 없는 부분일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압수수색을 당한 곳만 피해를 보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검찰은 핵심 관련자의 출국 금지 등 시급한 부분만 우선 처리하고 특검 수사를 지켜보는 쪽으로 가닥이 잡힐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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