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융의 굴욕…금감원, S&P등 직접 평가 허용 검토

  • 입력 2007년 11월 15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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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금융감독청 “한국 신용평가사 공신력 인정 못해”

“영국계 SC제일은행 평가, 외국사가 맡게 해 달라”

영국 금융감독청(FSA)이 “한국의 금융 관련 신용평가를 인정할 수 없다”며 “한국에 진출한 영국계 SC제일은행에 대해 FSA가 직접 지정한 신용평가회사의 평가를 허용해 달라”고 금융감독원에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FSA의 요구는 한국의 신용평가체계 자체를 믿을 수 없다는 뜻이어서 이른바 동북아 금융허브를 지향하는 한국 금융당국 및 금융계에 ‘굴욕적 사건’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14일 금융계에 따르면 영국 FSA는 올 8월 금감원이 국제기준에 맞는 적격 신용평가사로 지정한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한국신용정보 등 국내 3개사에 대해 “공신력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뜻을 금감원에 전달했다.

FSA는 또 내년 1월부터 금융회사 건전성과 관련한 새로운 자산평가기준인 ‘바젤2’가 시행될 때 SC제일은행 등 영국계 금융회사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 피치 등 세계적인 신용평가사를 이용하도록 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는 신뢰도가 떨어지는 국내 신용평가사에 평가를 맡기면 부실대출이나 부도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해 영국 본사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스탠더드차터드(SC)그룹의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금융회사들이 일단 외국에 진출하면 대체로 해당국의 금융감독당국이 지정한 평가사의 평가를 받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FSA의 이번 요구는 매우 이례적이다.

이와 관련해 금감원은 8월 말 SC제일은행과 3개 국내 신용평가사 임원들을 긴급 소집해 회의를 연 뒤 외국 신용평가사가 국내에서 신용평가 업무를 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방안이 확정되면 SC제일은행은 국내 평가사 대신 S&P나 무디스를 이용할 수 있게 돼 사실상 FSA의 요구를 전부 들어주는 셈이다.

금감원은 대신 한국 신용평가사도 영국에서 평가업무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FSA 측에 요구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금감원의 요구가 관철된다 해도 영국의 금융회사나 기업이 한국 측에 평가를 맡길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는 시각이 많다.

금융계는 이번 사례가 전례로 자리 잡을 경우 한국씨티은행이나 HSBC은행 등 국내에서 영업하는 다른 외국계 금융회사들도 대출자산과 기업 평가를 국내가 아닌 외국 평가사에 의뢰하겠다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FSA가 이번에 한국 신용평가사를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을 밝힘에 따라 그동안 잠재돼 있던 한국 금융에 대한 국제적 불신이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임경묵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FSA가 이미 공인된 국내 신용평가사의 수준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한국 금융당국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뜻과 같다”며 “외국 평가사의 국내 영업을 일단 허용하면 돌이키기 힘든 만큼 금감원이 FSA와 신중하게 협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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