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성 교수의 소비일기]고맙고도 무서운 쇼핑 메일

  • 입력 2007년 9월 1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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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열어 보는 e메일 상자에는 밤새 도착한 e메일이 가득합니다. 요즘처럼 명절을 앞둔 때에는 ‘추석맞이 감사 선물전’ 등 인터넷 쇼핑몰에서 보내오는 e메일로 넘쳐납니다.

오늘은 가끔 방문하는 인터넷 서점에서 e메일이 왔네요. ‘여정성 님께서 관심 있으실 책이 새로 출간돼 추천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아, 기가 막히게도 제가 딱 읽고 싶은 책을 소개하네요.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서점도 잘 가지 않는 제게는 더 없이 훌륭한 서비스입니다. 이 사이트는 그동안 제가 구입했던 책에 대한 정보를 분석해 저보다 더 확실하게 제 취향을 파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찌나 정곡을 찌르는지 섬뜩한 기분까지 듭니다.

e메일을 클릭하자 바로 그 사이트로 연결됩니다. 주문을 마치고 나오려다 화면 한 구석을 보니 ‘오늘 하루만 30% 할인해서 판다’는 책 광고가 죽 늘어서 있습니다. 얼른 또 눌러 봅니다. 웬걸, 그 옆에는 새로 개발된 생활용품을 소개하는 코너까지 설치됐네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휙 지나가고, 제 ‘장바구니’에는 엄청난 양의 책과 상품이 들어 있습니다.

언제나 이렇게 주객이 전도되듯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일이 생기네요. 한 권의 책에 끌려 들어갔는데 이렇게 한 보따리를 사게 될 줄이야. ‘책이야 마음의 양식인데, 뭐. 게다가 이렇게 싼 가격에 건졌는데’ 하면서 스스로 위로해 보지만 이렇게 ‘지른’ 것이 그리 흔쾌하지만은 않습니다.

온라인에서 소비자들은 인터넷쇼핑몰뿐 아니라 관련이 전혀 없을 듯한 곳에서도 끊임없이 쇼핑의 기회에 노출됩니다. 가령 날씨를 보러 신문사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상품 광고를 보고 끌려 들어가기도 하죠. 게다가 한 번쯤 거래했던 곳에서, 아니 들어본 적이 없는 곳에서도 쓰레기편지(스팸메일)가 쏟아져 들어옵니다. 그런 판촉 e메일들은 신상품에 대해 알려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좌판을 한 번만 누르면 바로 그 자리에서 간단하게 살 수 있도록 아주 편리하게 사이트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바쁜 현대인에게는 기가 막힐 정도로 유용한 수단이지요.

하지만 한편으론 이렇듯 쏟아져 들어오는 구매 유혹으로부터 자유롭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소비자가 얼마나 될까 괜스레 걱정됩니다. 제가 너무나 취약한 충동구매자라서 그런 걱정을 사서 하는 것일까요?

서울대 생활과학대 소비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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