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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6월 21일 15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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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돌아온 답변이 가관이었다. 다짜고짜 ‘분실’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델명을 가르쳐주며 똑같은 걸로 다시 동생에게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일주일 뒤 동생에게 확인해보니 S택배는 1만8,500원짜리 저가의 키보드를 보냈다. 이 씨가 동생에게 보낸 키보드는 7만 원이 넘는 고급품이었다. 이 씨는 다시 택배회사에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 회사 측은 “다 같은 키보드 아니냐. 이렇게 된 거 그냥 쓰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이 씨는 아직까지 화가 풀리지 않고 있다.
“처음엔 물건을 수령한 적이 없다고 거짓말하더니 곧 분실했다고 변명하고, 며칠 뒤에는 저가의 상품을 보내놓고 그냥 사용하라고 하지를 않나…. 소비자를 기만하는 것도 유분수지, 이정도면 막가파 수준 아닌가요.”
#2. 경기 남양주시에서 자영업을 하는 남정현(45) 씨도 비슷한 피해를 당했다. 남 씨는 지난 5일 평소 도움을 많이 받는 세 명의 지인에게 J택배를 이용해 양주를 보냈다. 택배 기사에게 한 곳당 1만5,000원을 지불했다. 기사가 “깨져도 책임지지 않는다”고 하기에 “포장을 잘해서 집어던지지만 않으면 괜찮다. 모쪼록 조심해서 잘 전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런데 두 곳에는 잘 도착했지만, 경기 부평시 창천동으로 보낸 ‘로얄샬루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6일 도착하기로 돼 있었는데 7일이 지나도 지인에게서 받았다는 답신이 없었다. 남 씨는 8일 지인에게서 “아직 안 왔다”는 말을 들었다. 즉시 J택배에 문의했다. 도중에 술이 깨져 사고처리반에 넘겼다는 답변을 들었다. 남씨는 “제때 도착하지 못했으면 연락이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따졌다. 회사 측은 “그날 당직을 선 직원이 실수로 연락을 못했다”고 했다. 남 씨는 너무 억울해서 “정말 깨졌는지 확인 해야겠다”고 했다. 회사 측도 “깨진 술병을 찾아서 보내주겠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보내주겠다던 ‘깨진 술병’은 18일이 지나도 도착하지 않았다. 남씨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회사 측은 “술이 깨진 건 확인할 길이 없다. 서로 믿어야 하지 않겠느냐. 손해배상은 못해준다. 고발을 하든지 마음대로 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남씨는 이번 일을 생각하면 하루에도 몇 번씩 화가 솟구친다며 격분했다.
“다른 택배회사보다 2배나 더 비싸게 받는 특급 택배회사라는 곳이 이렇게 소비자를 우롱해도 됩니까. 술 한 병 없어도 그만입니다. 하지만 택배회사의 어이없는 행태만은 고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다시는 저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을 테니까요.”
“10명 7명 ‘택배서비스’ 문제 있다”
택배회사들의 ‘묻지마 영업’이 소비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물품훼손, 분실 등 배달 사고와 관련해 택배회사들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보호원(소보원)에 접수된 택배 관련 상담건수가 해마다 늘고 있다. 2004년 2,157건에서 2005년 3,483건 2006년 3,587건에 이른다. 이중 소보원의 중재를 받은 건수는 2004년 159건, 2005년 301건, 2006년 314건이다.
올해는 6월말 현재, 소보원 인터넷 상담목록 검색창에 ‘택배’를 치면 3,122건에 달하는 민원이 올라있다. 전화와 팩스, 방문 등을 통해 접수한 사례까지 합치면 이보다 훨씬 많다. 게재된 내용은 분실, 물품 훼손, 배달 지연에서부터 택배기사의 불친절이나 욕설까지 다양하다.
이런 원성은 설문조사 결과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대전소비자시민모임이 최근 대전지역 시민 1,500명을 대상으로 ‘택배 서비스 관련 의식조사’를 벌인 결과, 전체 응답자의 77.5%가 택배 서비스에 불만이 있다고 답했다. 만족한다는 응답은 22.5%에 그쳤다.
불만 이유로는 지연 배송이 33.9%로 가장 많았다. 책임전가 등 분쟁 발생(28.2%), 물품 파손 및 분실(23.3%), 택배직원 불친절(14.6%)이 뒤를 이었다.
소보원 최영호 일반서비스팀장은 “접수된 사례를 보면 ‘훼손 또는 파손’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은 분실이다. 부당요금, 계약 위반 등도 있다. 앞으로 전자상거래가 더욱 활성화되는 만큼 피해사례도 더 많아질 것”이라며 소비자들의 주의를 요구했다.
최 팀장은 소비자들에게 △송장 또는 운송장을 본인이 직접 정확하게 작성한 뒤 보관할 것 △물품 종류 및 수량, 무게, 물품가액 등을 명확히 기입할 것 △농산물의 경우 김치, 고춧가루 등 명칭을 구체적으로 명기할 것 △물품은 받는 즉시 택배원이 보는 앞에서 훼손유무 등을 확인할 것 등을 조언했다.
그는 “그렇게 해야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며 “현재 아무리 비싼 물건이라도 50만 원을 초과해서 보상금을 받을 수 없도록 돼 있는데, 이 점도 개선하려고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승훈 동아닷컴 기자 h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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