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성훈]신약 개발 국가가 앞장서라

  • 입력 2007년 4월 13일 03시 05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됨에 따라 국내 제약 산업은 독자적인 신약 개발의 역량을 시급히 갖춰야 하는 도전에 직면했다. 지난 십수 년간 정부의 의지와 제약 기업의 노력으로 제약 산업이 많이 발전했지만 혁신성을 띠는 신약 개발에서는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시장 개방을 맞게 됐다.

국내에서 혁신적 글로벌 신약의 창출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는 신약 개발을 자체적으로 진행하기에 제약 기업의 재정 규모, 연구 역량 그리고 경험이 크게 부족해서다. 각자의 부족함을 서로 보완해야 하는데 현재 시스템에서는 산학연(産學硏) 연계가 원활하지 않다.

창의적이지만 성공 여부가 불확실한 초기 연구에 기업은 투자를 꺼린다. 이로 인해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도출되는 개발 잠재력이 있는 연구 결과가 사장되거나 개발시점을 놓친다. 제약 기업의 영세성과 산학연 연계 부재를 극복하는 정부 차원의 조치가 없다면 선진국의 각축장인 생명공학기술(BT)과 신약개발 분야에서 국제적 경쟁력을 잃을 것으로 우려된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몇 가지 제언이 있다. 신약 개발은 아이디어의 경쟁이지만 규모의 경쟁이기도 하다. 연구개발비가 적정한 임계치에 이르지 못하면 글로벌 신약의 개발을 기대하기 어렵다. 연구비 규모를 대폭 증가시켜 소수의 품목이라도 국제적 수준의 연구 규모를 갖춰야 한다.

다음은 개발 주체의 문제다. 한국은 철강 조선 자동차 반도체 전자 분야 등 국가의 미래가 달린 산업에서 민간의 경쟁력이 허약할 때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10∼20년 후 관련 업체가 세계를 선도하는 성공 신화를 많이 갖고 있다. 영세한 국내 제약 산업이 자생력을 확립할 때까지 국가가 주도적으로 신약 개발을 추진하고 지원하는 시스템이 절실하다.

신약 개발은 대표적인 첨단 융합형 기술 분야로서 다양한 기술 요소가 연계돼야 성공한다. 국내의 경우 신약 개발 관련 기업뿐만 아니라 연구자 및 연구 과제가 대부분 소규모이고 개별적이어서 상호 연계되지 못하고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다. 국가 차원에서 연계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연구 효율을 극대화하고 연구 역량을 혁신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글로벌 신약은 남들과 유사한 아이디어로는 개발하기 힘들다. 위험요소가 있어도 초기 연구부터 철저히 독창적인 아이디어 기반에서 시작해야 한다. 선진국의 다국적 제약사조차 새로운 연구 소재를 발굴하기 위해 대학이나 소규모의 벤처기업과 제휴한다. 이런 이유로 신약 개발은 기술기반이라기보다 과학기반산업으로 불리기도 한다.

신약 개발을 더는 민간 차원에만 맡겨 놓을 수 없다. 대한민국이 21세기 BT와 신약 개발에서 선진7개국(G7) 수준이 되려면 더 늦기 전에 국가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또 혁신 신약을 개발하기 위한 국영기업체 설립이나 국내 기업 및 대학의 신약 개발 연구를 활성화하고 연계하는 지원시스템 등의 방법을 다각적으로 모색해야 할 때다. 경쟁국인 중국과 인도는 오래전에 국가가 신약지원시스템을 구축하고 신약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연구자는 한국적 상황에서 가장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신약 개발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창의적 아이디어를 도출해야 한다. 10년 후 국민 건강과 의약품의 종속국이 될 것인가, 지배국이 될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이다. 오랜 역사를 통해 도전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왔던 국민과 과학자의 저력을 믿는다.

김성훈 서울대 교수·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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