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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4월 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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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한미가 FTA를 추진한 배경엔 정치 안보상의 목적이 양측에 공통적으로 있었다.
미국은 9·11테러 이후 자유무역의 역할을 테러 등 새로운 안보 위협을 억제하는 요소로 간주하고 FTA 협상 대상국 선정 시 ‘미국의 대외 및 안보정책에 대한 협력 정도’를 기준의 하나로 삼아 왔다.
미 행정부 관계자들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미국은 FTA를 동맹국이나 특별한 정치군사적 이해가 갖는 나라를 중심으로 체결해 왔다”며 “FTA 체결은 한미동맹을 포괄적 동맹으로 진전시키는 것”이라고 평가해 왔다.
미국은 중동지역에서 이스라엘 요르단 바레인 등 우방국과 FTA를 맺으면서 안보협력 국가에 우선적으로 시장을 개방한다는 원칙을 적용해 왔다.
정부 당국자는 “한미 FTA 협상 타결로 한미동맹의 폭이 넓어지고 깊이가 깊어질 것”이라며 “앞으로 미국과 북한 핵 문제 등 안보 현안이나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을 논의하기가 훨씬 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FTA 협상 타결은 불안정한 동북아시아의 외교 안보 지형에서 군비경쟁을 벌이며 한반도를 압박하는 중국 일본을 견제하는 방편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측면이 크다는 게 한국의 판단이다.
이동휘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최근 6자회담 2·13합의를 기점으로 한미동맹의 결속력이 회복 중이라는 평가가 많았는데 FTA 협상 타결은 여기에 큰 힘을 보탤 것”이라고 전망했다. FTA가 ‘동맹 접착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또 FTA 협상 타결로 북한에 대한 한미의 시각 차도 좁힐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은 지금까지 북한을 주로 정치 안보적 측면에서 대했으나 FTA 타결로 한국과의 경제관계가 밀접해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바라보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한미 FTA 협상 타결은 중국 일본 측에 대한(對韓) FTA 추진의 필요성을 증대시켜 동북아 지역협력 방안 논의 시 우리 외교력 강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1일 끝난 한일 외교장관회담에서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외상이 한중일 3국 외교장관 회담 정례화에 합의하면서 한일 FTA 협상 재개를 제안한 것도 한미 FTA 협상 타결을 의식한 포석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 내에선 FTA 협상 타결이 한국의 농민 및 노동단체를 중심으로 한 집단에 반미운동의 구심점을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관세 즉시 철폐 90% 넘어 높은 수준 시장개방 입증”
■ 양국 수석대표 일문일답
사흘 밤잠을 설치고 끼니도 제대로 못 챙긴 양국 협상단의 모습에서는 초췌함이 잔뜩 묻어났다.
사실상의 협상 마지막 날이던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2일까지 나흘간의 연장 협상 기간 동안 이들은 자국의 국익을 좌지우지할 수차례의 회의를 거듭하며 녹초가 돼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했어도 박수를 받는다는 보장이 없다. 자칫 협상을 잘못했다가는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라는 비난까지 감수해야 하기 때문. 그래서 협상단 관계자들은 “협상이 끝나면 그때부턴 욕먹을 각오부터 해야 한다”며 하소연할 정도다.
그동안의 노고를 제대로 평가받고 싶다는 뜻이었을까? 양측의 수석대표들은 “이번 협상을 자평해 달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모두 자신들이 ‘100점’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답했다.
―이번 협정에 100점 만점 중 몇 점을 주겠나.
▽웬디 커틀러 미국 측 협상단 수석대표=‘A+’를 주고 싶다. 아주 고(高)품질이고 균형이 잘 잡힌 협정을 이뤘다. 이번 협정에는 최첨단 내용이 담겼다. 지식재산권, 전자상거래, 경쟁정책에 대한 내용도 있고 환경과 노동을 보호하는 내용도 있다. 이런 협정을 김종훈 대표와 이룬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김종훈 한국 측 협상단 수석대표=커틀러 대표와 열심히 일했다. 커틀러 대표는 ‘A+’라고 했는데 나는 수우미양가 중 ‘수’를 주고 싶다. 큰 두 나라가 맺는 협정인 만큼 그 자체로서 세계 교역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다. 대략 상품의 관세 양허 중 ‘즉시 철폐’가 90% 이상인데 이는 시장 개방의 높은 수준을 보여 주는 척도다. 여러 분야에서 시장 개방을 상호 약속한 면이 있어 높은 점수를 자청하고 싶다.
―한국이 적극적으로 미국에 요구한 것이 자동차와 섬유 분야지만 별로 얻어 낸 게 없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김 대표=전반적으로 협상 결과는 양측에 크게 이익이 된다고 자평한다. 자동차의 경우 우리의 가장 주력인 수출품은 배기량 1500∼3000cc의 승용차다. 그 상품이 바로 이번 협상 결과로 즉시 (관세가) 철폐됐다. 섬유 부문에서는 우리 측이 농업에서의 민감성을 주장한 만큼 상대편의 민감성을 상당 부분 인정하면서 협상에 임했다. ‘윈윈’을 지향하면서도 상호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는 호혜 원칙을 견지했다.
―미국은 개성공단과 관련해 방침 변화가 있었다. 그 이유는….
▽커틀러 대표=오늘 타결된 협정 내용에는 역외(域外) 가공무역지대가 포함돼 있다. 우리는 한국과 협력하기로 한 것이다.
―수차례 “쇠고기 시장의 완전 개방 없이 FTA는 안 된다”고 했는데, 한국 측의 확약을 받았나.
▽커틀러 대표=먼저 쇠고기 검역은 FTA와 별개의 문제였다. 다음 달 국제수역사무국(OIE)에서 미국 쇠고기의 안전 등급을 최종 결정한다. 이 결정이 나오면 한국이 미국 쇠고기를 즉각 수입할지 지켜볼 것이다.
이날 협상장인 서울 용산구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는 양국 협상의 주역인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 김 대표, 커틀러 대표가 참석했다.
김 본부장과 바티아 부대표는 각자 모두 발언만 하고 황급히 자리를 떴으며 질의는 김 대표와 커틀러 대표만 받았다. 협상단이 질문을 4, 5개만 받고 대표들도 짤막한 답변으로 일관해 이날 질의응답은 예상보다 훨씬 짧은 20여 분 만에 끝났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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