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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비리그, 험난한 리그]<4>국내 취업 ‘좁은문’

입력 2007-01-24 02:58업데이트 2009-09-28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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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모(24) 씨는 지난해 부푼 꿈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1999년 고교 1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 가서 지난해 아이비리그인 코넬대를 졸업했다. 그는 국내에서 ‘보장된 삶’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막상 구직 과정에서 심한 충격을 받았다. 삼성 SK 등 국내 대기업에 계속 원서를 냈지만 번번이 떨어진 것. 서류 전형에서도 낙방해 낙심했는데 보다 못한 아버지가 인맥을 동원한 결과 한 외국계 기업에 취직할 수 있었다.

많은 비용을 들여 가며 조기 유학에 나서 유명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유학파가 냉혹한 취업 현실에 부닥치고 있다. 이들은 입사 시험에서 잇달아 낙방하면서 좌절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영어 이외의 경쟁력 갖고 있나?”

본보가 취업 포털 사이트 잡코리아와 함께 삼성, 현대, LG, SK 등 대기업 및 계열사 10곳을 대상으로 외국에서 대학 이상을 나온 조기 유학 출신자 채용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유학자라고 가산점을 주는 회사는 한 곳도 없었다. 최근 5년간 공채 사원 중 조기 유학자의 비율은 1∼3%에 그쳤다.

1980, 90년대 초반까지 조기 유학을 떠난 ‘조기 유학 1세대’와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조기 유학 2세대’는 다르다. 1세대가 비교적 여유 있는 가정 출신인 데 비해 2세대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가계 부담을 무릅쓴 중산층 가정 출신도 많다.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1998년 1562명이던 조기 유학 출국자는 2002년 1만 명을 넘어서 2005년 2만400명으로 급증했다.

이들은 외국으로 떠날 때 장밋빛 미래를 구상했지만 해외 어학연수 등으로 ‘국내파’의 영어 실력이 좋아진 데다 외국 대학 학위의 희소성도 떨어져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젠 영어 실력 외에 다른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국내 취업 시장에서 대우를 받기가 어렵다.

LG전자와 LG화학의 경우 5년간 공채에서 유학자 선발 비율이 7%로 비교적 높았지만 3명 중 2명은 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연구개발 인력이다. 삼성전자 등 일부 대기업은 미국 중국 등 현지에서 유학생 특별 채용을 실시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주립대 이상의 석사 및 박사를 대상으로 한다.

모 대기업 관계자는 “외국대 졸업자를 국내 대학 졸업자와 동등하게 취급한다”면서 “조기 유학자들은 자격증 등에서 국내파에 뒤처지고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국내 네트워크 없어 소외

방송작가 김모(25·여) 씨는 2001년 고교를 마치고 호주로 건너가 대학에서 미디어를 전공했다.

김 씨는 “대부분 작가는 방송아카데미를 통해 취업하거나, 선배들이 일자리를 소개해 주는데 나는 그럴 만한 사람이 없었다”며 “영어 모니터나 번역 등 실무적인 일을 하다가 겨우 프로그램 하나를 맡게 됐다”고 말했다.

아이비리그 등 유명 명문대나 동문이 많은 미국의 주립대를 제외한 나머지 대학 출신 유학파는 인적 네트워크나 해당 기업에 대한 취업 정보 부족 때문에 국내 취업이 어렵다고 호소한다.

국내에선 대학들이 기업 채용설명회를 개최해 취업 정보를 제공하거나 대학 취업정보센터 등을 운영해 취업을 돕고 있는데, 유학파는 자체 인맥을 활용하거나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통해 제한된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는 것도 취업난에 한몫을 한다.

○한국 문화 낯설고 처우 불만으로 이직 잦아

김모(35) 씨는 아이비리그에서 공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국내 기업의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상명하복 식의 기업 문화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그는 “미국에선 아이디어를 내면 대환영인데 한국에선 튀는 행위,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로 받아들인다”며 “관료적이고 딱딱한 분위기와 업무 외의 인간관계에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이 피곤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한 주립대 출신인 장모(30) 씨도 “대기업 입사를 생각해 봤지만 딱딱하고 일만 많이 시키는 분위기 때문에 유학원에서 일하게 됐다”며 “힘들게 대기업에 들어가더라도 조직에 적응하지 못해 그만두는 조기 유학생을 많이 봤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한 인사담당자는 “조기 유학파가 어학 실력과 글로벌 마인드를 갖추는 등 장점도 있지만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고 희생정신이 부족하다”며 “유학하면서 확실한 전문성을 쌓아야 인정받는 시대”라고 말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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