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라”없고 “사라”뿐… 한국증시 골병든다

  • 입력 2007년 1월 23일 02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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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속았다 싶지요. 이젠 믿고 싶지도 않아요.” 회사원 백승천(43) 씨는 증권사들의 ‘장밋빛 전망’ 일색에 불만을 터뜨렸다. 지난해 손해를 봐서 보유 주식 전부를 팔려고 했다는 백 씨는 “새해 주가가 오른다는 전망이 많아 한번 더 믿어 보자는 심정으로 들고 있었는데, 주가 급락으로 손실 폭이 더 커졌다”고 털어놨다. 낙관적 전망에 치우친 한국 증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매번 “주가가 오를 것”이라며 주식을 사라고 ‘고(go)’를 외치지만 결과가 딴판으로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증시의 비관적 측면을 지적해 주는 ‘쓴소리’가 사라지고 낙관론을 얘기하는 ‘달콤한 소리’만 득세하면서 균형 잡힌 투자 전망이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많다.》

○ “온통 ‘사라’는 의견뿐”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5년 국내 증권사들의 투자의견 보고서 가운데 74%가 매수를 추천한 반면 매도는 2%에 불과했다. 지난해 1∼5월에는 매수, 매도 추천 비중이 각각 79%, 1%로 사실상 ‘팔자’ 의견이 자취를 감추는 상황이 됐다.

전체 주식시장 전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2005년 코스피지수가 한 해 동안 483.45포인트(54%) 급등한 데 고무된 국내 증권사들은 대부분 한목소리로 ‘대세 상승기’를 주장하면서 2006년 투자 전망을 ‘장밋빛’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지난해 코스피지수는 고작 4% 올랐을 뿐이다.

올해도 증권사들은 “주식을 사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작년에 안 올랐으니 오를 때가 됐다’는 논리다. 일부 증권사는 올해 주가가 최대 1,800 선까지 오를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특히 새해 1월에는 ‘1월 효과’로 크게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코스피지수는 새해 들어 22일 현재 71.05포인트(5%)나 빠졌다.

○ ‘비관론자들은 대부분 퇴출’

증시에 낙관론만이 득세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국내 증권사들은 자기자본을 굴려 수익을 내는 투자은행(IB) 업무보다 투자자들의 매매 수수료 수입에 크게 의존한다.

투자자들이 자꾸 주식을 사야 돈을 버는 구조다. 이렇다 보니 “앞으로 주가가 떨어지니 주식을 팔라”는 의견을 낼 형편이 못 된다.

동부증권 신성호 상무는 “증권사는 주식을 세일즈하는 곳인데, 팔라고 하면 장사가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래서 낙관론은 애널리스트(기업 분석가) 스트래티지스트(투자 전략가) 이코노미스트(거시경제 분석가) 등 증시 분석가들이 생존하는 방편이라는 지적이 많다.

‘오른다’고 했다가 틀리면 아무 일 없지만 ‘내린다’고 했다가 틀리면 바로 퇴출되는 게 국내 증권가의 현실이다.

임송학(교보증권) 박윤수(우리투자증권) 유동원(씨티글로벌마켓증권) 전 리서치센터장 등 국내 증시의 대표적인 비관론자들은 약세장을 전망했다가 최근 2∼3년에 주가가 상승하면서 시장을 떠났다.

매도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투자자들도 문제가 많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영익 대한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난해 2분기(4∼6월)에 크게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가 ‘밤길 조심하라’는 전화까지 받았다”며 “내린다고 했다가 반대로 오르면 ‘당신 말 듣고 주식 팔았다가 망했다’는 투자자들 항의에 배겨 내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CJ투자증권 자동차담당 최대식 연구원은 이달 8일 매도 의견을 냈다가 “이런 ×××야. 네가 내 돈 책임질래?”라며 항의하는 수백 통의 전화 공세로 한때 출근을 못하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 ‘쓴소리 나오는 증시 만들어야’

증시 분석가들은 투자의 ‘안전판’ 역할을 하는 ‘쓴소리’를 보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투자증권 김학균 연구원은 “비관론자들은 증시에 끊임없는 경고를 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실제 위기를 피해 나가는 데 역할을 해주지만 지금 국내 증시엔 그런 사람이 다 떠나고 없다”고 했다.

국내와 달리 외국 증권사의 분석가들은 할 말은 하고, 또 주가가 하락한다는 의견을 내도 신상에 큰 불이익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릴린치증권 이남우 전무는 “영업파트와 연결고리가 단절돼 있어 영업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로이 의견을 개진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비관론자인 모건스탠리증권의 스티븐 로치 수석이코노미스트는 10년 넘게 거의 매년 약세장을 점쳐 왔지만 아직도 건재하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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