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사관계 ‘역주행’]<中>특권의 상징 ‘빨간 조끼’

  • 입력 2007년 1월 16일 03시 01분


파업 출정식 현대자동차 노조가 부분파업에 돌입한 15일 낮 울산공장 본관 앞에서 열린 파업 출정식에서 노조원 4000여 명이 지도부의 지휘에 따라 파업결의를 다지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울산=최재호 기자
파업 출정식
현대자동차 노조가 부분파업에 돌입한 15일 낮 울산공장 본관 앞에서 열린 파업 출정식에서 노조원 4000여 명이 지도부의 지휘에 따라 파업결의를 다지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울산=최재호 기자
《현대자동차 노조가 출범하기 전 현대차 근로자들에게 가장 무서웠던 대상은 경비아저씨였다. 경비가 일명 ‘바리캉’을 들고 다니며 머리가 긴 근로자들의 머리카락을 그 자리에서 싹둑싹둑 잘랐기 때문. 근무시간 중에 화장실에도 마음대로 못 가고 윗사람에게 무릎을 걷어차이기 일쑤였다. 사실상 군대나 다름없었다. 현대차 노조에서 부위원장을 지낸 이영희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다른 마음은 없고 당시에는 오직 인간으로 대우받고 싶은 마음에서 노조를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이런 소박하고도 절실한 욕구를 바탕으로 출범했던 현대차 노조가 20년 만에 연간 조합비 70억 원, 적립금 100억 원의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됐다. 노조 간부들이 ‘빨간 조끼’를 입고 일손을 놓고 있다는 비판 속에서도 세상의 흐름을 거부하는 데는 노조 간부가 되는 것 자체가 ‘특권’이 됐기 때문. “인간답게 살고 싶다”던 노조 집행부가 출범 20년 만에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비정규직의 목소리는 업신여기는 특권층으로 변한 것.일손을 놓고 급여를 받는 노조 간부가 1987년 24명에서 지금은 사실상 500명 남짓으로 늘었다.》

○‘일 잘하는 근로자’도 대의원이 선정

2005년 7월 울산 현대차 3공장의 한 작업반 근로자들이 옷장과 의자 교체를 요청했다. 옷장과 의자 등은 다소 낡았지만 당장 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근로자들은 작업반장을 통해 회사에 요청했다. 회사는 이듬해 예산에 반영해 2006년 교체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손쉬운 방법이 있었다. 노조 대의원이 담당 임원에게 즉각 교체를 요구했고 2개 월 뒤 새 옷장과 의자가 들어왔다.

관리직인 K 차장은 “대의원이 즉각 해결하라고 엄포를 놓으면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며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어떤 문제든 임원이나 상급자보다 대의원을 통해 해결하는 게 낫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일 잘하는 근로자를 위한 인센티브제도인 우수종업원 해외 연수, 연리 2%인 주거지원금 지원 대상 등의 선정 권한도 사실상 대의원이 갖고 있다.

한번 빨간 조끼를 입으면 노조 간부를 그만둘 때도 특권을 누린다. 상대적으로 일이 고되지 않은 간접 생산부서로 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관리직인 L 차장은 “그들이 다음 선거에서 또 노조 간부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본인들이 원하는 부서에 배치한다”고 털어놓았다.

○일 안해도 특근-잔업수당까지 받아

파업을 앞둔 12일 오후 현대차 본관 앞. 빨간 조끼를 입은 노조 간부들이 9개 천막을 치고 농성 중이었다.

이들의 명찰에는 조그만 노조 표시가 돼 있었다. 이런 명찰을 달거나 빨간 조끼를 입고 있으면 정문 출입 때 누구나 해야 할 출입 확인도 필요 없었다.

본관 앞에서 취재기자를 만난 노조원 L(40) 씨는 노조 간부들을 ‘그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그는 “파업만 아니면 매달 300만 원가량을 가져가는데 그 사람들 때문에 지난해 300만 원 정도 소득이 줄었다”고 말했다.

현대차 인사부에 따르면 현대차 근로자의 기본급 비율은 51% 선. 나머지는 잔업수당, 특근수당 등으로 채워진다. 이 때문에 잔업 거부 파업만 해도 하루 7만∼8만 원씩 임금이 준다.

입사 15년차인 C 씨는 같은 작업장 동료가 2004년 노조 대의원으로 선출되자 일시적으로 일감이 늘었다.

그는 “대의원인 동료가 일손을 놓은 탓에 그의 일까지 다른 동료들이 나눠서 해야 했다”며 “대의원은 일도 하지 않으면서 특근수당, 잔업수당까지 받아간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의 부패

1991년 처음 노조 대의원에 선출된 P 씨는 지난해까지 7번 대의원에 당선됐다. 울산공장의 대의원 250명 가운데 P 씨처럼 7선 이상인 조합원은 16명. 250명 중 74%인 185명이 재선 이상의 대의원이다.

세 차례 대의원을 지낸 L(42) 씨는 “한 번 대의원에 당선되면 생산 현장으로 돌아가기보다 계속 노조 활동가로 남으려는 경향이 있다”며 “대의원을 여러 번 지낸 경력자가 많아지면서 노조의 투쟁동력이 강해지고 이는 다시 대의원들의 힘을 강화시킨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노조 간부들의 권력이 강해지면서 잇단 비리도 터져 나왔다.

1999년 당선된 정갑득 위원장 때는 노조의 광고비 비리 문제가 불거졌고, 지난해에는 노조창립기념품 관련 비리로 노조의 총무실장이 구속됐다. 2005년에는 노조 간부들이 취업 장사를 해 8명이 구속되기도 했다.

회사 관계자는 “신입사원 채용 때 노조 간부의 추천서를 외면하기 어렵다”며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조 간부들의 요청을 많이 들어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 처우개선엔 무신경 파업으로 이달 월급만 반토막”▼

현대차 노조가 연말 성과급 추가 지급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인 15일 오후.

사내 비정규직 근로자 A(38) 씨는 “현대차 노조 집행부가 우리들의 처우개선은 크게 신경을 안 써 주면서 노조 집회가 있을 때면 퇴근을 못 하게 한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정규직 근로자와 같은 라인에 근무 중인 A 씨. 현대차 노조가 지난해 12월 28일부터 특근과 잔업을 거부한 데다 15일부터 부분파업에 돌입하자 이달 25일 받는 월급은 80만 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평균 월급의 거의 절반이 현대차 노조의 파업 등으로 날아가 버리는 것.

현대차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노조 활동가들은 말로는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들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는 집단으로 비친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와 현대차 노조 비정규직실, 그리고 회사 측 노사협력지원팀은 현대차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2004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14차례 협상을 벌였다.

그러나 현대차 노조가 지난해 12월 28일부터 성과급 투쟁을 벌이면서 이 논의는 중단됐다. 특히 울산지검이 이달 초 현대차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불법파견에 대해 ‘무혐의’ 판정을 내렸을 때도 현대차 노조는 성과급 지급 투쟁을 벌이느라 이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비정규직연대회의 이상원 의장은 “외환위기 이후 현대차 노조가 자신들의 고용안정에 역점을 두는 바람에 사내 비정규직이 확대되는 요인이 됐다”며 “현대차 노조가 노동계의 대표성을 띠는 점을 고려할 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개선에도 역점을 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바로잡습니다▼

△16일자 A3면 ‘현대차 노사관계 역주행’ 기사 중 5공장 근무자 500명은 당초 회사 설명과 달리 쉬는 게 아니라 회사에서 직무교육을 받고 있으며, 단협 조항에 따라 100% 급여를 받고 있습니다. 또 회사 측은 당초 노조가 전환배치를 거부했다고 밝혔지만 5공장의 경우 전환배치 문제는 노사가 합의했으며, 희망자 모집 등 추후 일정이 진행되던 중 성과급 사태로 중단됐습니다. 신차인 ‘BH’는 에쿠스 후속모델이 아닌 별도의 신차라고 알려왔습니다. 이와 관련해 노조 등 관계자들에게 유감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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