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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1월 24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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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도청과 관공서 주변은 불에 탄 나무와 깨진 벽돌, 유리조각 등 시위 잔해가 여기저기 널려 있어 출근길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광주지역 기관장들은 “‘민주의 성지’로 자부해 온 광주에서 이처럼 폭력 시위가 벌어진 것은 지역의 명예를 더럽히고 우리 모두의 자긍심을 짓밟는 부끄러운 일”이라는 성명을 냈다.
대전
화염에 검게 그을린 경찰청 홍보게시판, 부서진 철제 담장과 벽돌, 불에 탄 수백 그루의 향나무가 폭격을 맞은 듯했다.
충남도와 경찰은 지나는 시민들에게 폭력 시위의 실상을 보여 주기 위해 시위 잔해를 치우지 않고 있다.
최민호 충남도 행정부지사는 “충남도 근무를 시작한 1987년 이후 이런 과격 시위는 처음”이라며 “시민들에게 과격 시위의 실태를 보여 주기 위해 일단 하루만이라도 현장을 보존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출근길 시민들은 혀를 차며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현장을 카메라에 담던 택시운전사 함덕근(49) 씨는 “어제 시위를 보고 민주와 평화를 외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듯 폭도처럼 행동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며 “영업시간이지만 인터넷에 올려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다시 찾았다”고 말했다.
피해 조사를 벌이던 충남도 권오인 서무담당은 “어제 시위로 불에 탄 향나무 190그루는 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할 때 옮겨 심은 것으로 70년이 넘는 것”이라며 “도청의 상징인 보물이 소실된 셈”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광주
현관 안쪽에 전시돼 있던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생산된 ‘뉴카렌스’ 승용차도 돌멩이에 맞아 차체가 움푹 들어가 있었다.
청사 마당 시민광장에 깔려 있던 붉은색 벽돌바닥은 시위대가 들어내는 바람에 조각이 나 시청 건물 현관에 수북이 쌓였다.
한 시청 공무원은 “‘FTA 협상 저지’와 국민의 세금으로 지어진 시청사 파괴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광주시는 이날 “시청사 파괴 행위에 앞장선 세력이 기아차 노조를 중심으로 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었다”고 분명하게 지목했다.
박광태 광주시장과 강박원 시의회의장, 홍영기 전남지방경찰청장, 방철호 광주시민사회단체총연합회장 등 기관장들은 공동성명을 내고 “이번 폭력 시위를 주도한 ‘한미 FTA 저지 광주전남운동본부’ 허연 공동대표 등 집행부와 폭력 시위 가담자 모두에게 140만 시민의 이름으로 응분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며 형사처벌 및 손해배상청구 방침을 밝혔다.
춘천·창원 강원 춘천시 봉의동 강원도청 앞 광장도 철제 대문과 기둥이 뜯겨 나가고 정문 초소의 유리가 모두 깨진 채 흉한 모습이었다.
대문 옆 화단은 많은 시위대가 일시에 진입하는 바람에 짓밟혀 조경수가 꺾였고 꽃과 나무가 있던 화단도 오래된 등산로로 착각될 만큼 땅이 파여 있었다.
도청 앞 광장은 시위대의 횃불 시위로 5, 6군데가 시꺼멓게 그을려 있었다.
강원도는 이번 시위로 정문 기둥 1개와 철제 대문, 정문 초소의 3면 유리, 도청 정원 조경수 향나무 2그루와 매화나무 1그루, 장미 수십 그루가 짓밟혀 2000만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광주=김 권 기자 goqud@donga.com
춘천=최창순 기자 cschoi@donga.com
▼ 기획 시위에… 범국본, 민노총-전교조와 날짜 맞춰
무계획 경찰… 전국 동시다발 폭력시위에 부실대응 ▼
2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를 위한 전국 집회가 관공서 습격 등 동시다발적인 폭력시위로 변질되면서 주최 측이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한 ‘기획 시위’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는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 결의대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교원평가 저지 전국 교사대회’에 맞춰 집회 날짜를 잡았다. 집회 장소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으로 민주노총과 전교조의 집회 장소와 같은 곳이었다.
세 단체가 이렇게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집회를 열 수 있었던 것은 민주노총과 전교조가 범국본에 참여하고 있는 300여 개 단체 중 핵심 단체이기 때문이다. 전교조는 또 민주노총 산하 조직이다. 우문숙 민주노총 대변인은 “(세 단체의) 집회 날짜와 장소가 우연히 겹친 건 아니다. 범국본이 일부러 날짜를 그렇게 맞춘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과 전교조는 또 각각 개최한 집회 이름에도 ‘한미 FTA 저지’라는 내용을 모두 넣어 놓아 같은 장소에서 열린 범국본 측의 반(反)FTA 집회에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경찰청 관계자도 “범국본이 민주노총과 전교조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일주일에 3번 정도 투쟁 전술회의를 열어 집회 행동 방침, 집회 동원 인원을 정하고 시위 관련 장비를 각 단체에 할당하기도 한다”며 “각 지방의 시위대가 비슷한 시각에 일제히 관공서 진입을 시도한 것도 미리 계획된 시위였음을 보여 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반면에 경찰은 부실한 대응으로 일관해 화를 키웠다.
실제 22일 집회 때 경찰은 8000여 명이 모인 서울에는 77개 부대 8500여 명의 전·의경을 배치했으나 시위가 격렬했던 전남지역에는 1만2000여 명이 모였는데도 30개 부대 3300여 명만 배치했다. 방화와 폭력이 난무했던 대전 충남지역에서도 7200여 명이 집회에 참가했지만 경찰은 11개 부대 1200여 명만 배치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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