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놓고 먹고싶다]<上>수입식품 불신의 늪

  • 입력 2005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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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김치는 먹어도 되나”25일 경기 평택항 인근의 한 보세창고에서 경인지방식약청 직원들이 기생충 검사를 하기 위해 수입 김치에서 샘플을 수거하고 있다. 식약청은 ‘기생충 김치’ 파동 이후 중국산 수입 김치에 대해서는 건별로 기생충 검사를 하고 있다. 평택=신원건 기자
“이 김치는 먹어도 되나”
25일 경기 평택항 인근의 한 보세창고에서 경인지방식약청 직원들이 기생충 검사를 하기 위해 수입 김치에서 샘플을 수거하고 있다. 식약청은 ‘기생충 김치’ 파동 이후 중국산 수입 김치에 대해서는 건별로 기생충 검사를 하고 있다. 평택=신원건 기자
《중국에서 고추, 콩 등 농산물과 가공제품을 수입하는 세종K&C 김철교(金澈敎) 대표는 요즘 “중국 공장이 그렇게 비위생적이라면서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답답하다. “중국에도 정수시설을 잘 갖추고 위생적인 식품 공장이 많습니다. 중국산 불량식품이 끊이지 않는 데는 무조건 싼 것만 찾는 한국 수입업자의 책임이 95%라고 봅니다. 참조기 박스를 A급(40kg 이상)으로 팔기 위해 납덩어리를 넣는 것도 한국 사람들이에요.”》

불량 수입식품이 한국에서 줄을 잇는 까닭은 뭘까. 원산지의 비위생적인 생산 과정 탓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기본적으로 한국의 책임”이라고 지적한다.

중국산에 문제가 많다고 중국 탓만 할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한국 수입업자들의 양심 문제와 부실한 검사, 해외 정보 수집의 한계 등이 어우러져 빚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 불량 권하는 한국 수입업자

김치 수입업자 L 씨는 “현지에서 60위안 수준인 김치 값을 30위안으로 후려쳐 사거나 외상으로 가져온 뒤 ‘한탕’하고 잠적하는 수입업자도 있다. 그런 이들 때문에 전체가 매도당한다”고 억울해했다.

중국에서 김치 공장을 운영하는 수입판매업자 P 씨는 “일본에 수출되는 중국 김치는 대부분 100억∼200억 원을 들여 지은 공장에서 만드는 반면 한국에 수출하는 김치는 시설비 1억∼2억 원을 들인 영세업체 공장에서 만든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 수입업자들이 영세 공장을 찾아 저가 불량식품 공급을 부추기는 것은 개인의 ‘양심’보다 식품 수입판매업자에 대한 관리가 부실한 탓이 더 크다.

경인지방식약청 평택수입식품검사소 관계자는 “식품 수입업은 신고제여서 사무실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고 영업 정지를 당해도 대표 이름만 바꿔 다시 신고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검사망을 피해 싼 농산물을 들여오는 보따리상도 문제다. 세관에서 임의로 골라 검사하지만 거의 적발되지 않는다.

러시아와 무역업을 하는 L 씨는 “진짜 웅담과 돼지 쓸개를 섞은 가짜 웅담이 보따리상을 통해 들어오기도 한다”며 “시중 한약재의 70%가량은 보따리로 들여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사회연구원 정기혜(鄭基惠) 식품영양연구팀장은 “수입업자의 이력 관리가 전혀 안 되는 것이 수입식품 관리의 가장 큰 문제”라며 “수입업자들을 모두 전산망에 등록하고 3번 연속해서 불량식품 수입 사실이 적발되면 퇴출시키는 ‘삼진아웃제’를 도입하는 등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구멍 뚫린 검사 기준

사건이 터지면 그때서야 뒤늦게 검사 기준을 만드는 정부의 대처 방식도 문제다.

수입 단계의 검사는 정해진 항목만 하므로 새로운 유해 물질을 분석하지 못한다. 국립수산물검역원은 말라카이트그린 사태가 터지기 전엔 검출장비조차 갖고 있지 않다가 지난달 말 새로 마련했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부적합 판정을 가장 많이 받은 수입식품은 중국산이었다. 2위는 식생활이 달라 통조림 등 가공식품에서 식품첨가물의 기준이 다른 미국산이었다.

품목별로 보면 가공식품이 7년 연속 부적합 판정 1위. 그러나 수입식품 중 가공식품의 검사 기준이 가장 부실하다. 소비자시민모임의 문은숙(文恩淑) 기획실장은 “다소비 가공식품은 원료식품과 마찬가지로 잔류 농약 및 중금속 검사를 실시해야 하지만 이를 하지 않고 있으며 아예 기준이 없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 해외 위해정보 수집 능력도 떨어져

검사를 강화해야 하지만 모든 품목을 정밀 검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재 수입식품 정밀검사는 전체 수입식품의 15%대로 미국(5%대)보다 높다.

그러나 무작위 정밀검사에서 나오는 부적합 판정률은 0.4%대로 미국의 3%보다 한참 떨어진다. 검사를 해도 적발해 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여기엔 해외의 부정 불량식품 제조 및 유통과 관련한 정보를 미리 알아내는 정보 수집 능력의 부재도 한몫한다. 현재 식약청의 위생취약국 주재관은 중국 베이징에 식약관 1명뿐이다.

이영(李楹) 식약청 위해정보관리팀장은 “정부 각 부처의 위해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공동으로 활용하고 위생취약국 주재관 파견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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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日수입업자들은 종업원 채변검사까지 요구

지난해 일본의 한국산 김치 수입 물량은 3만 t. 중국산 김치 수입량은 절인 배추 등 ‘유사 김치’를 포함하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 파악이 어렵지만 6만∼7만 t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일본에서 저질 김치가 사회 문제가 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일본의 수입업자들은 극성스러울 정도로 품질 관리를 철저히 한다. 수시로 한국의 김치공장을 방문해 △공장이 위생적으로 가동되고 있는지 △계약대로 좋은 재료를 쓰고 있는지 △제조 공정에 문제는 없는지를 꼼꼼히 살핀다. 기생충 알이 김치에 섞이는 것을 막는다는 이유로 종업원들의 채변검사 결과까지 요구하는 업체도 있다.

이런 원칙은 중국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혹시라도 수입한 식품에 문제가 생기면 당국으로부터 전량 회수 및 폐기 명령을 받아 비용 손실이 막대하다. 유통업체와의 거래가 끊어지는 것은 물론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아 업체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지는 것도 각오해야 한다.

도쿄(東京) 최대의 한국식품 유통업체인 ‘한국광장’의 호시노 히로이쓰(星野광逸) 상무는 “일본 수입업체들은 납품 계약을 할 때 제품의 위생상태와 품질 등에 대해 까다로운 조건을 내건다”며 “납품 단가를 깎지 않고 합리적인 가격을 보장하기 때문에 현지 생산업체들도 일본 수출용 제품에는 그만큼 신경을 쓴다”고 설명했다.

일본 당국의 수입식품 통관 체계는 허술하다 싶을 정도로 느슨하다. 검사에 합격하면 1년간 별도검사를 받을 필요가 없다. 그나마 검사도 수입업체가 제출하는 샘플 위주로 이뤄진다.

하지만 통관에 합격해 시중에 유통되는 단계부터 이중 삼중의 체크를 받는다. 후생노동성이 전문 조사기관에 의뢰해 수시로 시중에 유통 중인 제품을 무작위로 회수해 검사를 실시한다. 각 지방자치단체도 자체 예산을 들여 비슷한 검사를 한다. 여기서 한 항목이라도 걸리면 즉각 시중에 풀린 모든 제품을 회수해 폐기 처분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두산식품BG 도쿄사무소의 박은걸(朴殷傑) 소장은 “소비자들도 제품이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유통업체와 보건소에 신고하고 불매운동을 벌여 응징하는 게 일반화돼 있다”며 “음식으로 ‘장난치다’ 걸리면 회사가 망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고 말했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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