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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9월 2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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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체들이 백화점 할인점 등 유통업체의 유통망과 구매력에 굴복한 데 이어 방송프로그램 및 인터넷 콘텐츠를 만드는 업체들도 네트워크를 장악한 사업자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라도 네트워크를 통해 소비자와 만나지 못하면 소용없기 때문이다.
○ 유통업체가 제품기획
할인점 홈플러스 신선2팀 임유진(林裕眞) 바이어는 최근 C식품회사가 납품하는 팥빙수의 팥 함량이 표시보다 적은 것을 발견했다. 즉시 C사에 “표시된 만큼 팥을 더 넣으라”고 요구했다. C사는 이에 따라 제품의 질을 높였고 맛이 더 좋아진 팥빙수는 20% 이상 매출이 늘었다.
신세계 이마트 양곡 담당 박승화(朴勝華) 과장은 참살이(웰빙) 바람을 타고 흰쌀처럼 먹을 수 있는 흑미가 인기를 끌 것으로 확신했다. 하지만 시중에 그런 제품은 없었다. 그는 흑미 가공업체 ‘팜스코리아’에 제품 개발을 요청했다.
팜스코리아는 박 과장의 입에서 “맛있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시제품 개발에 공을 들였다. 박 과장의 아이디어는 1년 만에 ‘안토시안 참쌀’이라는 제품으로 빛을 봤다. 현재 이마트 식품 매장의 인기품목 중 하나다.
유통전문가들은 “소비자의 관심과 취향이 유통망에 낱낱이 걸리면서 유통업체의 기획과 아이디어가 반영된 상품이 성공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한다.
○ 눈치 보는 방송 프로그램 공급자
방송 통신 분야에서도 네트워크의 위력이 커지고 있다. 케이블TV 업계에서는 방송망 사업자인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가 프로그램 공급자인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다.
1995년 케이블TV가 개국할 때 SO들은 PP가 만든 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내보내야 했다. 그러나 1998년 8월 의무송신 규정이 없어지고 채널 편성권을 갖게 된 이후 SO들은 PP들에 우월적인 힘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개국 초기에는 시청료 수입의 80%를 SO와 PP가 반반씩 나눠 가졌으나 최근엔 약 20%만 배분하고 나머지는 SO가 시청률 방송시간 마케팅 기여도 등에 따라 PP들에 차등 지급한다.
방송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119개 SO의 당기 순이익은 692억 원으로 2003년(253억 원)에 비해 173.5% 급증했다.
반면 홈쇼핑 채널 5개를 제외한 나머지 122개 PP의 순이익은 490억 원에 그쳤다. 영화 애니메이션 등 극소수 PP를 제외한 대부분의 PP는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 통신업계도 ‘망 사업’ 주도권 다툼
SK텔레콤과 포털사업자들은 무선망 개방을 놓고 5년째 갈등을 빚고 있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사업자들은 “휴대전화에서 ‘네이트’ 버튼을 눌렀을 때 사용자 설정에 따라서는 네이트가 아닌 다른 포털사이트와도 연결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SK텔레콤은 “운영 노하우가 없는 포털사업자들에게 콘텐츠 관리를 넘길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네이트에 접속한 소비자들은 SK텔레콤의 메뉴를 보고 벨소리, 게임 등을 사기 때문에 ‘목좋은’ 자리를 얻기 위한 콘텐츠 제공업자(CP)들의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연구정보센터 권호영(權晧寧) 센터장은 “예전에는 ‘콘텐츠가 왕’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지금은 소비자와의 소통 통로를 장악한 네트워크 업계의 영향력이 훨씬 세졌다”며 “앞으로도 콘텐츠 업계의 어려움은 지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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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엽 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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