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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8월 17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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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 물어 보라. 한국의 기업이라는 점이 해외에서 영업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를…. 손사래를 친다. 그냥 삼성, LG, 현대 브랜드로 알려지는 게 낫지 한국 기업임이 밝혀지면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
‘코리아’라는 국명 브랜드가 이들 기업 브랜드 가치보다 훨씬 떨어진다는 뜻이다. 수출부서 실무자들은 대체로 “외국인 눈에는 한국은 여전히 툭 하면 파업과 과잉 시위를 벌이는 나라, 정치인들끼리 멱살잡이 하는 나라, 북한 핵 문제 때문에 안보가 불안한 나라로 비친다”고 말한다. 상담(商談)이 잘 진행되다가도 한국 상황이 보도되면 깨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
▼바이어들, 국적 밝히면 거부반응▼
외국 언론엔 가끔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진이 나란히 나온다. 국제적으로 위험한 인물을 소개할 때다. 한국과 북한을 여전히 혼동하는 외국소비자들은 이런 보도를 보고 나면 ‘코리아’ 브랜드를 꺼리게 된다.
지금 아테네에서는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올림픽을 이용해 브랜드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활약상도 눈에 띈다고 한다. 각국 올림픽 관계자들은 수시로 삼성전자에서 제공한 휴대전화를 살펴본다. 경기 결과와 메달 순위 등 각종 정보가 휴대전화로 전달되어서다. LG전자는 그리스 주요 항구를 오가는 여객선 외벽과 아테네 시내 지하철 열차에 큼직한 LG 로고를 붙였다. 현대자동차가 각국 귀빈, 선수단, 기자단을 위해 제공한 차량 500여대는 아테네 시내를 누비고 있다.
한국의 민간기업들은 코카콜라 마쓰시타 코닥 등 선진국 거대 기업들이 활개 치는 이런 무대에서 뛰고 있다. “한국 기업은 1류, 정치는 3류”라는 평가와 “3류가 1류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이 여전히 성립하는 것 같다.
한국의 정치권과 일부 시민운동권을 보자. 과거의 흠집을 찾아 내기 위해 현미경을 곳곳에 들이대는 형국이다. 거목에 작은 흠집이라도 발견되면 이걸 확대해서 나무 전체가 썩었다는 프로파간다를 퍼뜨린다. 역사 청산이라는 미명 아래 벌어지는 정략적 행위임을 누가 모르랴. 이래서는 진정한 역사 청산이 이뤄질 수 없다. 권력층이나 원리주의자들의 입맛대로 사실 자체가 왜곡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강자의 논리대로 기술(記述)된 것이 정사(正史)란 타이틀을 달고 남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미래를 바라보는 망원경은 없는가. 과거는 미래에 도움이 되는 교훈과 지식을 줘야 중요하지 그것 자체는 이미 흘러간 옛일이다.
집권층 내부에서 아테네 올림픽을 보며 베이징 올림픽을 어떻게 활용하겠다고 구상하는 미래지향적인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호주 정부는 시드니 올림픽의 노하우를 전하겠다며 중국 정부에 적극 접근해 상당수 사업권을 따낸 바 있다. 베이징 올림픽과 관련한 중국 인프라 건설 수요는 500억∼1000억달러로 추정되는 엄청난 물량이다.
존망(存亡)을 항상 걱정하는 기업들은 베이징 올림픽 활용 방안을 벌써부터 고심하고 있다. 눈길이 현재와 미래에 쏠려 있다.
▼미래 내다보는 망원경 어디있나▼
한국 정부는 기업에 무엇인가. 기업 브랜드 가치를 갉아먹는 송충이 같은 존재라 하면 너무 심한 표현일까. 관존민비, 가렴주구…. 이런 행태가 남아 있음을 기업인들은 절감한다.
대통령은 자신이 별로 힘이 없다고 호소하는 작전을 구사하지만 대기업 그룹 총수들을 한자리에 억지로 불러 모아 놓고 일장훈시를 할 수 있는 권력자가 한국에서 대통령 이외에 누가 있겠는가. 선진국 기업인들은 이런 장면이 독재국가에서나 벌어지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한국의 미래에 대해 정부와 민간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비하는지를 집권층에 묻는다. 이제 망원경을 집어 들어야 할 때다.
고승철 편집국 부국장 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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