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와인 高大’

  • 입력 2004년 7월 1일 19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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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람들은 동물성 지방을 더 많이 섭취하는데도 심장병 사망률이 미국이나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훨씬 낮다. 이 프렌치 패러독스의 해답은 바로 프랑스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레드 와인에 있다. 여러 연구결과에 따르면 적포도주에 들어 있는 ‘레스베라트롤’이라는 물질은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감소시키고 암 발생을 억제하며 노화방지 효능이 있다. 레드 와인은 적포도를 껍질과 씨앗째 으깨 발효시킨다. 붉은빛도 껍질에서 나오고 레스베라트롤도 껍질에 주로 들어 있다. 최근 포도주가 통풍(痛風)에도 무해하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레드 와인은 일약 ‘건강의 술’로 떠올랐다.

▷술의 선택은 주머니 사정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50∼60년대는 소주와 막걸리의 시대였다. 70년대 들어 맥주 소비가 늘어났고 80년대 중반부터는 양주시장이 커졌다. 소득이 늘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2000년대는 바야흐로 와인의 시대를 맞은 것 같다. 작년 전체 주류시장은 1% 성장에 그쳤지만 와인은 50% 이상 성장했다. 단일 품목으로는 가장 높은 성장률이다. 동네 가게에서 칠레 와인을 팔 정도다. 여기저기서 와인을 가르치는 강좌가 인기를 끈다.

▷고려대가 프랑스 와인 2만병을 수입해 레벨에 대학 사진을 넣고 교내 매점에서 판매할 예정이다. 민족의 대학에서 세계의 대학으로의 변모를 상징하는 기념물이라고 한다. ‘막걸리 대학’이 ‘와인 대학’으로 바뀔 모양이다. 막걸리가 민족의 술이라면 포도주는 세계의 술이다. 와인 문화를 모르면 서양인과 감정적인 유대관계 형성이 힘들다는 이야기도 있다. 막걸리는 트림이 고약해서 국제화하기는 틀렸다.

▷고려대 교수를 지낸 고(故) 조지훈 시인은 술에 대한 자세를 가르치는 글에서 “싼 술을 마시되 높게 놀아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싼 술’은 막걸리를 의미한다. 포도주는 조금 비싼 것이 흠이다. 괜찮은 와인을 사려면 아무래도 1만원짜리 이상이라야 한다. 학생들에게는 부담이 될 것이다. 조 시인이 고려대 교내 매점에서 팔리는 100주년 기념 와인을 보았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싶다. ‘조금 비싸더라도 와인을 마시며 높게 놀아라.’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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