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이전 왜 서두르나”…수십조 국민부담

  • 입력 2004년 6월 13일 18시 20분


정부의 신행정수도 건설 계획이 행정기능뿐 아니라 사법 및 입법부와 주요 국가기관까지 옮겨가는 사실상의 ‘천도(遷都)’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야권과 일부 전문가들은 수도 이전이 조선의 서울 정도(定都·1394년) 610여년 만에 이뤄지는 국가적 대사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여론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국민투표나 공청회 등을 통해 국민적 동의를 사전에 구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여권은 “이미 정치적 법적 의견수렴이 끝난 사안”이라며 정면 돌파 입장을 분명히 하고 나서 수도이전 문제가 정치쟁점으로 비화될 조짐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R&R(대표 노규형·盧圭亨)는 13일 전국 성인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9일 실시한 전화여론조사 결과 국민투표 실시 필요성에 대해 ‘동의한다’는 답변이 71.1%, ‘동의하지 않는다’가 25.1%로 국민투표 찬성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고 밝혔다.

같은 날 MBC의 의뢰로 코리아리서치센터가 전국 성인남녀 103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7.5%가 국민투표 실시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경희대 김병진(金秉辰·행정학·전 한국정책학회장) 교수는 “국민적 합의를 거치겠다고 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약속 이행 차원에서뿐 아니라 수십조원의 부담을 국민에게 지우는 중대한 사안인 만큼 국민이 납득할 만한 여론수렴 절차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현재와 같이 정부의 일방적 주도에 의해 추진될 경우 또 다른 국론분열의 위험성까지 안고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이방호(李方鎬) 의원 등 한나라당의 영남권 의원 35명은 이날 국민투표 추진에 대한 찬성 서명작업에 들어갔다. 이들은 한나라당 소속 의원은 물론 여당 의원들로부터도 서명을 받아 국회의장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11일 언론사 경제부장단 간담회에서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칠 생각이 없다. (그에 대한) 국민투표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국민투표 거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열린우리당 김형식(金亨植) 부대변인도 이날 논평을 통해 “신행정수도 건설은 서울의 경제 사회 문화 교육기능은 그대로 두고 정부기능만을 이전하는 것이므로 ‘천도’를 이유로 한 국민투표 요구는 억지”라고 비판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