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고공행진]‘3차 오일쇼크’ 는 없다

  • 입력 2004년 3월 24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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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가(高油價) 추이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일각에서는 ‘오일쇼크’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일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유가 상승의 원인과 가격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아직까지 ‘쇼크’를 말할 단계는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1979년 2차 오일쇼크는 전형적인 공급 부족에 기인했다. ‘이슬람 혁명’으로 이란 내 모든 석유 생산 설비가 혁명 정부의 손에 들어간 뒤 원유 수출이 전면 중단돼 세계적인 공급 파동으로 번진 것이다.

반면 최근의 유가 상승세는 미국 달러화 약세의 여파로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제한적인’ 감산(減産) 결정을 내린 데서 촉발됐다. 석유 시장의 유통 구조도 당시와는 전혀 다르다. 2차 오일쇼크 때는 국제 석유 메이저회사가 전체 유통 물량의 95%를 점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일부 메이저회사의 공급 차질이 석유시장 전체의 유통망을 마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지금은 개별 국가나 기업이 참가하는 현물 거래 시장은 물론 선물(先物) 시장도 활성화돼 있어 얼마든지 공급선을 바꿀 수 있다. 특정 지역의 원유 수출이 제한되면 다른 지역에서 물량을 공급받을 수 있는데다 선물 계약을 통한 안정적인 수급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원유 가격도 당시와는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80년 연평균 유가(사우디아라비아산 경질유 기준)는 배럴당 36.01달러로 현재의 미 서부텍사스 중질유(WTI)와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80년 유가를 물가 상승률을 감안해 지금의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실질 가격은 배럴당 100달러가 넘는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가격을 ‘오일쇼크’로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이문배(李文培) 연구위원은 “일부에서는 선물 시장 확대에 따른 투기성 자본 증가로 1, 2차 오일쇼크 때보다 유가 변동성이 커졌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는 단기간의 급등락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유가가 큰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석유 공급 경로의 다변화와 산유국들의 엇갈린 이해관계 등을 감안하면 현재 상황을 오일쇼크에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덧붙였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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