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高-油高-원자재파동 ‘3각 파도’…경기회복 물거품되나

  • 입력 2004년 2월 11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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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세계 경기 회복이라는 호재를 업고 출발했던 한국 경제가 유가와 환율, 원자재라는 ‘삼각파도’에 발목이 잡혔다.

특히 이들 세 요소는 한국 경제를 그나마 지탱해 온 수출경쟁력과 직결되는 것이어서 올해 경기 회복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수출경쟁력 저하 ‘삼각파도’=유가와 원화 가치, 원자재 값 상승은 이미 수출경쟁력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11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작년 순(純)상품 교역조건지수는 89.5로 2002년의 연간 지수인 95.0보다 5.5포인트 낮아졌다. 이는 한은이 교역조건 통계방식을 재편한 1988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순상품 교역조건지수는 수출 상품 한 단위로 맞바꿀 수 있는 수입량을 뜻한다. 따라서 이 지수가 떨어지면 교역조건이 나빠져 수출 기업의 채산성이 악화된다는 뜻이다.

지난해 월별 교역조건지수는 1월 89.4에서 9월 94.8로 나아지다가 원자재 값 상승이 본격화된 10월부터 하락세로 돌아섰다.

여기에는 최근의 유가 급등과 서방선진7개국(G7) 재무장관회담 이후부터 본격화된 원화가치 상승이 반영되지 않은 만큼 올해 교역조건은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유가 상승은 대부분 국가의 수출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치지만 한국은 원유를 100% 수입하고 있어 모든 산업의 생산 위축으로 이어진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또 소비와 투자가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수출 감소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충격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비상 걸린 산업계=철강, 비철금속 등 국제 원자재 값 폭등으로 가뜩이나 ‘2·4분기 대란설’에 긴장해 온 산업계는 고(高)유가와 원화가치 상승까지 겹치면서 비상이 걸렸다.

내수 부진 속에 수출로 버텨왔던 자동차부문은 이미 경쟁력 약화가 현실화되고 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1월 수출은 전달보다 각각 28.9%와 37.2% 급락했다.

조류독감 확산으로 타격을 입은 항공업계는 유가 상승까지 감수해야 할 판이다.

대한항공은 올해 경영계획에서 항공유(油) 연간 가격을 배럴당 30달러로 전망했지만 이번 OPEC의 감산 결정으로 비용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

원화강세로 항공유 수입부담이 상대적으로 완화되는 영향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손익분석을 하기 어렵다.

▽경제 회생 늦어질 수도=경기 회복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한은에 따르면 배럴당 유가가 연간 5달러 오르면 성장률은 0.3% 떨어지고 물가는 0.5% 오른다. 또 원화가치가 10% 상승하면 성장률과 물가가 각각 0.8%와 1.0%씩 하락한다.

올해 한은이 예상한 경제 성장률은 5.2%. 여기에는 유가가 배럴당 26달러(북해산 브렌트유 기준), 원자재 값은 작년 말보다 3∼5% 상승이라는 전제가 포함돼 있다.

하지만 유가는 10일 29.86달러로 한은 전망치를 훨씬 뛰어넘었다. 원자재 값은 작년 말보다 평균 2%(로이터 상품지수 기준) 올랐지만 철근, 알루미늄 등 국내 소비가 많은 품목은 50% 이상 급등했다.

이에 따라 한은과 정부가 당초 예상했던 5∼6%대 경제 성장이 어렵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한은 장민(張珉) 조사총괄과장은 “아직은 연초이기 때문에 좀더 추이를 지켜봐야겠지만 지금과 같은 대외여건 악화가 성장률을 끌어내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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