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LG전자 공사현장 가다…"PDP세계1위" 희망의 망치소리

  • 입력 2003년 12월 31일 16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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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가 있는 곳에 생기가 있다. 지난해 12월 22일 LG전자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3라인 구미공장 공사 현장. 총공사비 3300억원인 이 공장 건설을 위해 전국에서 건설근로자들이 모여들었다. 또 올 7월 공장이 가동되면 400∼500명의 일자리가 새로 생긴다. 2004년 한국은 건강한 투자로 고용을 증대시키고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인가. 박영대기자
투자가 있는 곳에 생기가 있다. 지난해 12월 22일 LG전자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3라인 구미공장 공사 현장. 총공사비 3300억원인 이 공장 건설을 위해 전국에서 건설근로자들이 모여들었다. 또 올 7월 공장이 가동되면 400∼500명의 일자리가 새로 생긴다. 2004년 한국은 건강한 투자로 고용을 증대시키고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인가. 박영대기자
《‘일자리 구하려면 구미로 가라?’ 크리스마스를 사흘 앞둔 지난해 12월 22일 경북 구미시 공단동 144의 4. 거대한 크레인이 가로 11m, 세로 1m의 무거운 콘크리트 패널을 옮기느라 굉음을 내고 있었다. 안전모를 쓴 공사장 근로자들은 LG전자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3라인의 외장을 대형 콘크리트 패널로 마무리하느라 연말 분위기도 잊은 채 분주히 움직였다. 당초 올 9월 완공 예정이던 이 공장은 PDP의 공급부족으로 그 시기가 7월로 앞당겨졌다. 3300억원이 투자된 지하 1층, 지상 4층의 이 공장이 완공되면 LG전자는 월 14만장의 생산능력을 갖추며 세계 1위 PDP 생산업체가 된다.》

▽투자가 있으면 사람이 몰린다=비슷한 시간, 같은 공단의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LG필립스LCD의 6세대 초박막 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LCD) 공장이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연면적 10만평으로 지상 50m까지 올라가는 이 공장은 공정의 70% 이상이 진행되면서 외형을 거의 갖췄다. 건물 내부에 클린룸을 설치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투자가 있으면 생기(生氣)가 도는 법. 이 ‘법칙’은 공사장 주변에서 쉽게 입증된다. 현장 주변에 포장마차와 헌옷가게들이 늘어섰고, 근처 담에는 건설근로자들에게 숙소를 제공하려는 월세 광고들이 가득했다.

추석부터 공사장 출입구 바로 앞에서 헌옷장사를 하고 있다는 조성우씨(37)는 “지금은 내부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장인원이 6000명까지 늘었다. 헌옷을 파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말했다. 주변 도로에 빼곡히 주차된 건설근로자들의 차량 번호판이 전국을 망라하고 있는 점도 투자현장의 생기를 대변했다.

공장이 완공되면 채용도 늘어난다. LG전자 구미공장은 지난해 9월 PDP 2공장 가동을 시작하며 직원이 400명에서 1000명 가까이로 늘었다. 올해 7월 3공장이 가동되면 추가로 400∼500명을 채용한다. LG필립스LCD도 올해 말부터 공장 가동을 시작하면 8000명인 직원이 1만2000명으로 늘어난다.

구미 시내 곳곳에는 ‘수출 200억달러 달성’이라는 ‘70년대식’ 경축 현수막이 걸려 있다. 200억달러는 올해 전체 수출의 10%를 차지할 정도의 높은 수치다. ‘투자 활성화’가 화두인 한국 경제가 올해 이랬으면….

그러나 그늘도 있다. 구미상공회의소의 김용배 과장은 “19일자로 달성한 수출 200억달러의 대부분은 전기·전자 업종에서 나왔다”며 “섬유산업 등 다른 업종과의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산업은행이 조사해 지난해 11월 발표한 ‘2004년 국내기업 설비투자 계획’에서도 제조업 투자 중 정보기술(IT)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2년 38.2%와 2003년 46.4%에서 48.2%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나타났다. 충남 아산(삼성전자-소니 합작)과 경기 파주(LG필립스LCD)에 20조원과 12조원이 투자돼 새로 지어질 공장도 TFT-LCD 분야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투자 격차도 점점 벌어지고 있다. 전경련 조사부 김철 팀장은 “전체 10만개 기업 중 99.7%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투자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같은 투자금액으로 거둘 수 있는 고용증대 효과도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 관행의 변화=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투자가 건강해진다는 신호. 기업들이 과거와는 달리 기대수익과 위험을 더 철저히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LG전자 PDP 3공장 투자 과정에서는 당장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LCD와의 경쟁상황에 대비한 시나리오가 합동토론회 방식으로 재점검됐다. 10여명의 태스크포스가 한 달 반 동안 밤을 새워 가며 수요와 공급, 판매가 동향, 경쟁사 동향, 예상손익, 투자효율, 제품의 성능 등을 점검하며 투자규모와 시기를 조율했다.

PDP사업부장인 김한수 상무(구미공장)는 “경쟁 제품으로 LCD가 가장 크게 대두됐다. 그러나 LCD가 원가를 줄여 40인치에서 가격경쟁력을 갖추더라도 PDP는 50인치 이상에서 새로운 수요가 창출될 것으로 판단했다”며 투자결정 과정을 설명했다.

김 상무는 또 “경영환경의 급변으로 신중한 투자 못지않게 빠른 결정도 중요해져 경영판단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며 “PDP산업에서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신중하면서도 빠른 판단 덕분”이라고 말했다. 삼성SDI 김순택 사장은 지난해 12월 5일 제2라인 준공식에서 바로 3라인 신설을 언급하며 “엉뚱한 데 투자를 하면 주주들이 나를 가만히 놔두겠느냐”는 말로 달라진 투자환경을 시사했다.

삼성전자 서종국 차장은 “외환위기 이후 축적된 이익 범위 내에서 신중하게 투자하는 기조가 굳어졌다. 올해 투자규모 역시 이런 원칙 하에 확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투자규모는 2003년 7조700억원에서 약 15% 늘어난 8조원 규모로 전망된다.

삼성경제연구소 윤 상무는 “중국과의 경쟁구도에서 ‘탈(脫)제조’할 것이냐, ‘초(超)제조’할 것이냐를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며 “배를 만드는 2차 산업에서 배에 들어가는 제어시스템을 만드는 ‘2.5차 산업’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LG전자의 한 간부는 투자활성화 대책에 대해 “정부는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더 과감히 없애야 한다. 투자환경 조성도 중요하다. 첨단공장은 기존 산업단지와의 연관성 때문에 지방에 짓는 경우가 많은데 고급 연구인력을 지방으로 데려오려면 여전히 어려움이 많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구미=허진석기자 jameshuh@donga.com

<특별취재팀>

허승호차장(팀장) 이병기 김광현 김태한 박중현 이은우 이철용 홍석민 이나연 허진석기자(이상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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