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재경부 갈등 전말]‘外換곳간’ 운용주체 힘겨루기

입력 2003-12-11 06:49수정 2009-10-08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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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과 재정경제부 사이에 한국투자공사(KIC)를 둘러싸고 갈등이 빚어진 것은 올해 들어 외환보유액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외환보유액은 11월 말에는 1500억달러를 넘어섰다.

청와대 직속 동북아 경제중심 추진위원회는 지난달 26일 외환보유액 일부를 해외에 투자하기 위해 KIC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구상에는 한은이 외환보유액을 지나치게 안정성 위주로 운용하고 있다고 본 재경부의 ‘입김’도 영향을 미쳤다.

위원회는 이 계획을 발표하면서 “싱가포르 투자청(GIC)과 같은 정부투자기관은 외환보유액의 효율적 관리와 해외신인도 제고에 큰 역할을 할 것이며 한국이 동북아 금융허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와 재경부가 추진해 온 KIC설립 논의 과정에서 외환보유액 운용책임을 맡고 있는 한은은 배제됐다.

이에 대해 한은은 이달 초 ‘기밀’에 속하는 외환보유액의 투자수익률을 공개하는 초(超)강수를 두며 KIC 설립에 반발하고 나섰다.

이재욱(李載旭) 한은 부총재보는 4일 기자회견을 갖고 “한은의 외환보유액 운용수익률은 국제투자은행들의 기준 수익률 6.14%를 웃돌고 있어 수익성이 낮다는 비판은 온당치 않다”고 밝혔다. 한은이 외환보유액 운용수익률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지금까지 국정감사 답변에서도 공개한 바 없다.

이 부총재보는 또 “통일 등까지 고려하면 현재 외환보유액이 오히려 더 늘어야 하며 11월 말 외환보유액 1503억달러 가운데 1269억달러(84%)는 ‘한은 소유’이고 나머지 234억달러(16%)만이 외국환평형기금으로 정부 소유”라며 “외환보유액을 헐어 투자하자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런 반발의 배경에는 “과거의 경험에 비춰볼 때 KIC가 재경부의 외청(外廳)으로 재경부 관료들의 ‘노후보장용 직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한은측의 ‘의심’도 작용했다.

그러나 한은의 외환보유액 운용수익률 공개는 ‘역풍(逆風)’을 불러왔다.

재경부 당국자는 “한은 발표 내용을 분석하면 바로 외환시장 개입규모를 알 수 있어 국익에 해로운 데도 한은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공개하면 안 될 것까지 밝혔다”고 공격했다. 한은의 수익률 공개는 감사원의 특감 결정에도 빌미를 준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 경제중심 추진위원회는 11일 대통령에게 KIC 설립계획을 보고하고 구체적인 추진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KIC 설립’ 쪽에 훨씬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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