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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11월 25일 17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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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직원의 말에 홍모씨(47·경기 고양시)는 기가 막혔다.
‘최대 1억원까지 된다’고 정부가 발표했던 최초주택마련 중도금 대출이 3000만원밖에 안 되고 더욱이 연대보증인까지 세워야 한다니…. 경기 남양주시의 아파트를 분양받아 20년 만에 이룬 내 집 마련의 기쁨이 가시는 기분이었다. 홍씨는 할 수 없이 건설회사가 알선하는 비싼 금리의 일반 중도금 대출을 받았다.
아파트를 분양받은 서민에게 혜택을 주겠다는 취지로 2001년 시작된 최초주택마련 중도금 대출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국민주택기금에서 할당된 재원을 은행이 중개해 주는 이 상품은 ‘은행 문을 열자마자 당일 한도가 동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25.7평 이하 주택을 마련하는 20세 이상 무주택 가구주에게 집값의 70% 또는 1억원 한도 내에서 빌려준다. 연 6%의 고정금리에다 1년 거치 19년 상환 또는 3년 거치 17년 상환으로 대출조건도 비슷한 상품 가운데 가장 유리한 편.
25일 건설교통부와 은행권에 따르면 최초주택마련 대출을 취급하는 국민, 우리은행과 농협은 11월부터 중도금 대출 한도를 가구당 1억원에서 5000만원으로 내린 데 이어 연대보증인을 세우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말로는 ‘연대보증인 1인당 최대 3000만원까지’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2, 3명을 세워도 3000만원을 빌리기 어렵다는 게 은행에 나가본 이들의 얘기다.
이는 중도금 대출에 필요한 신용보증서를 끊어주는 주택신용보증기금이 부실화해 보증 여력이 줄어든 데 따른 조치다. 보증 여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가급적 많은 이들에게 혜택을 주려다 보니 한도를 줄이고 연대보증을 세우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것.
하지만 서민들은 멋모르고 은행에 갔다가 창구 직원에게 ‘정책 발표와 은행 업무는 별개’라는 대답만 듣는다. 홍씨는 “은행과 정부가 자기들끼리 공문을 주고받은 후 ‘할 일 다 했다’는 것 아니냐”고 야속해 했다.
건교부 관계자는 “연대입보와 한도축소는 주택신보의 보증 여력 축소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라며 “중도금 대출 이외에 준공된 주택에 대한 구입자금대출은 종전대로 1억원 한도 안에서 차질 없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초주택마련 대출은 올해 말까지만 이뤄진다. 정부는 내년에 서민 및 근로자 대상의 주택관련 정책대출 상품을 ‘근로자 서민 주택구입자금’으로 통폐합할 방침이다. 내년에는 주택신보의 자본이 확충돼 중도금 대출에 대한 연대보증을 없앨 수 있고 중도금 대출자에 대해 주택이 완공되면 최대 5000만원까지 구입자금 대출 형식으로 메워줄 계획이다.
이철용기자 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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