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미수금에 무너져서야"…현대건설 사장의 눈물

  • 입력 2003년 10월 3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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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을 훌쩍 넘긴 이지송(李之松·64·사장) 현대건설 사장이 기자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미국에서 벌이고 있는 이라크 건설공사 미수금 회수 작업을 설명하기 위해 2일 뉴욕 특파원들과 마주한 자리였다.

이 사장은 서두에는 이라크 정부를 상대로 미국에서 벌인 소송 2심에서 2일 승소판결을 받았으며 워싱턴에서 채권단들과의 회의도 잘 돼간다는 소식을 전하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1991년 걸프전 이후 미수금 11억400만달러(약 1조2700억원)를 회수할 수 있다면 현대건설은 탄탄대로의 보증수표를 받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어 이 사장은 “태어나서 처음 미국에 왔는데 때마침 이라크 파병 문제가 불거져 조심스럽기만 하다”고 말을 꺼냈다. 10년 이상 대기업 임원과 교수를 지낸 그가 미국에 처음 왔다는 것은 의외였다. 기자들이 “정말이냐”고 거듭 묻자 그는 감옥살이보다 더 했던 해외근무 경험을 털어놓았다.

“11년간 외국살이 한 곳은 흙먼지 날리는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말레이시아입니다. 사막의 공사현장에 한번 나가면 15일 만에 밥을 한 차례 지어놓고 밥을 그릇에 담아 물을 붓고는 한참 저은 뒤에 윗부분만 조심스럽게 떠먹습니다. 그래도 자근자근 모래가 씹히죠.”

“외국생활을 하는 동안 가족들을 한번도 데려오지 못했습니다. 죽을 고비도 넘겨봤습니다. 그래도 그 일 아니면 먹고 살지 못하는 줄 알고 열심히 일만 했습니다.”

그의 손은 떨리기 시작했고 젖은 목소리도 높아졌다.

“이라크 미수금은 무기를 팔거나 부정한 짓을 해서 번 돈이 아닙니다. 이라크 국민에게 필요한 집과 병원을 지어주고 길을 내 준 대가로 받을 돈입니다. 이 사실을 국내외에 잘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미수금만 받으면 현대건설은 세계에서 제일가는 기업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던 이 사장은 끝내 흐느꼈다. 청춘을 바친 회사가 한국의 대표기업으로 성장하다 이라크 공사에 자금이 물려 위기에 빠진 현실에 감정이 북받쳐 오른 것이다.

“국가경제를 생각해서도 연간 매출 8조원이 넘는 회사가 무너질 수는 없는 일입니다. 현대가 살기 위해 이라크 미수금은 꼭 받아내야 합니다.”

그는 “파병이 좋은지 나쁜지는 몰라도 군대를 보내면 우리 목소리가 좀 커지지 않겠습니까”라며 조심스레 파병에 기대를 걸었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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