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디스,한국신용 내릴 가능성…1단계 낮추면 年 5억달러 부담증가

  • 입력 2003년 2월 11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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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영향력이 큰 신용평가회사인 미국 무디스가 11일 전격적으로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긍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두 단계 낮춤에 따라 적잖은 파장이 몰려올 것으로 보인다.

우선 신용등급 전망이 이처럼 낮아지면서 이르면 4월경 한국의 국가신용등급도 현재의 A3에서 Baa1으로 한 단계 떨어질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지면 한국 금융기관과 기업이 국제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릴 때 더 높은 금리를 물어야 한다. 또 이미 빌린 돈에 대한 금리도 올라간다.

1998년 2월 이후 이어져온 신용등급 상승세가 처음으로 꺾인다는 점에서 상징적, 심리적 의미도 크다는 분석이다.

▽국가 신용등급 떨어질 가능성 있어=전망이 ‘긍정적’일 때는 몇 개월 안에 신용등급이 올라가고 ‘부정적’일 때는 내려가는 것이 과거의 예다.

무디스는 이번에 신용등급 전망을 떨어뜨린 이유로 북한의 행동 및 국제사회의 대응과 관련한 불확실성을 꼽으면서 “북한 핵문제가 악화하면 등급상향 가능성보다 하향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무디스는 이어 “최근 북한이 보인 일련의 조치가 과거보다 과격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한국이 신용등급 하락을 막기 위해서는 북한 핵문제를 조속히 해결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해법이지만 현재로선 낙관하기 어렵다.

북한 핵문제가 한국 정부의 의지만으로는 풀 수 없는 데다 시간적으로도 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무디스는 당초 일정대로라면 4월경 한국을 방문한 뒤 국가신용등급 조정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어서 길어야 2개월 정도의 여유밖에 없다.

무디스는 새 정부의 노사정책과 공기업민영화 등 경제정책에 관해서도 4월 재점검한다는 계획이다.

무디스와 더불어 3대 신용평가회사로 꼽히는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와 피치가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도 관심사다.

두 회사는 일단 “현재로선 신용등급이나 전망을 바꿀 계획이 없다”고 밝혔으나 북핵문제가 더 악화하면 하향조정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시각이다.

▽신용등급 전망 하향조정의 영향=국가신용등급은 정부나 국책은행 등이 해외금융시장에서 자금을 빌릴 때 금리를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의 하나로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금리 부담이 커진다.

이와 관련, 재정경제부 권태신(權泰信) 국제금융국장은 “무디스가 조정한 것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자체가 아니라 전망(outlook)”이라며 “국제금융시장에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정부의 희망사항일 뿐 현실은 다르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당장 4월로 예정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차환발행부터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영국계 투자회사인 핸더슨코리아 오광희(吳侊禧·전 한국신용정보 신용평가본부장) 대표는 “전망만 바뀌어도 해외금융기관들은 한국 채권에 대한 금리 조정을 시작한다”면서 “발행시장뿐 아니라 유통시장에서도 한국 채권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나 국책은행뿐 아니라 일반은행이나 기업들도 영향을 받기는 마찬가지. 국가신용등급은 그 나라 금융기관이나 기업에 대한 신용등급의 ‘천장’이다. 금융기관이나 기업이 아무리 경영을 잘 해도 국가신용등급 이상을 받을 수는 없다.

무디스가 이날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낮추면서 국민은행 기업은행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예금보험공사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담배인삼공사 등의 신용등급 전망도 ‘부정적’으로 낮춘 것은 이런 맥락이다.

전문가들은 영향력이 큰 신용평가회사가 국가신용등급을 1단계 조정하면 차입금리가 0.35%포인트 낮아지거나 높아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국가신용등급이 1단계 떨어지면 연간 5억달러의 차입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된다는 뜻. 기업이 외국에서 보험을 들 때 내는 보험료도 신용등급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정부 제대로 대응했나=무디스는 지난해 11월15일 “지속적인 대외부문의 개선, 건실한 경제정책 유지, 유연한 환율정책, 외환보유액 확충 등으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에 대한 한국의 대응능력이 현저히 개선됐다”며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올린다고 발표했다.

무디스는 △구조개혁 지속 여부 △대통령 선거 이후 안정적인 정부 이양 △대외경제여건에 대한 적절한 대응 △남북관계 추이 등을 중점 점검한 뒤 한국의 신용등급을 A3에서 A2로 올릴지 여부를 최종 결정하겠다는 방침이었다.

정부는 이에 따라 올 상반기(1∼6월)안에 무디스 신용등급이 한 단계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북한 핵문제가 계속 악화되고 여중생 치사사건으로 인한 반미시위가 확산되자 정 반대 조짐이 나타났다. 무디스가 1월 6일 신용등급 전망을 ‘긍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한국정부에 통보한 것.

정부는 부랴부랴 무디스 실사팀을 초청, 1월 20일부터 이틀동안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재정경제부 한국은행 금융감독위원회 등을 방문하게 함으로써 사태 진화에 나섰다.

정부는 실사팀의 방한활동이 끝난 뒤 “무디스가 4월까지는 한국의 신용등급전망을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으며 최근까지 사태를 낙관해오다가 ‘뒤통수’를 맞았다.


천광암기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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