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JOB]中企-건설현장 인력대란

  • 입력 2002년 8월 12일 18시 36분


【“불법근로자라도 써야지 어떡합니까. 수천만원짜리 기계가 놀고 있는 걸 보고만 있으란 말입니까.”(경기 성남시 아벨전기 문희수 사장) “2년 동안 구직 광고를 냈지만 단 3명이 찾아오더군요. 그것도 하루 이틀 근무하고는 모두 떠났습니다.”(경기 안산시 소프트전자 김동필 사장) 중소기업 인력난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집단 이동이란 ‘돌발변수’로 인해 과거 찾아볼 수 없었던 정도의 심상찮은 상황으로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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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企 외국인근로자 '썰물'

시화공단 내 도금공장 ‘다우금속’. 올해 초만 해도 직원 16명이 공장을 돌리고 있었으나 지금은 12명으로 줄었다. 5월 불법체류자 자진신고 이후 합법적 신분으로 바뀐 필리핀 노동자 4명이 돈을 더 많이 주는 공장으로 빠져나갔기 때문. 이 때문에 이 회사는 올해 초 대비 70% 수준으로 최근 생산이 줄었다.

양귀순 사장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내년 3월로 예정된 강제출국 기한까지 어떻게든 돈을 더 벌기 위해 공장을 빠져나가고 있다”며 “일할 사람이 없어 언제 공장 문을 닫을지 모르는 형편”이라고 한숨지었다.

인근에 있는 도금업체인 ‘예성’은 최근 외국인 노동자 1명을 더 충원했다. 그러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늘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올해 초 이 공장의 근로자는 11명. 그 가운데 외국인은 인도네시아 출신 2명이었다. 불법체류자 신고 이후 인도네시아인 근로자 2명이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임금을 올려주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떠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울며 겨자먹기로 두 달 전 월급을 5만원씩 올려줬다. 그러자 다른 공장의 인도네시아인 1명이 일하고 싶다며 찾아왔다.

경창영 사장은 “외국인 노동자 1명을 충원했지만 그다지 반갑지 않다”며 “다른 공장에서 임금을 더 주면 언제든지 떠나기 때문에 공장마다 임금을 올려줘야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고 말했다.

건설업계의 사정은 더욱 열악하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옌볜의 조선족 동포들이다. 건설업 특성상 의사소통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10명씩 팀을 지어 일하다보니 일자리를 옮길 때도 무리를 지어 이동한다. 요즘은 더욱 조직화돼 팀장끼리 휴대전화를 이용해 현장별 일당을 수시로 체크한다. 이들을 잡아 두기 위해 대부분 건설업체들이 숙소까지 제공하는 형편이다.

인력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임금 수준도 국내 근로자와 별 차이가 없다. 목수 일당이 13만원에 달한다.

한라건설 김학재 현장소장은 “골조공사 투입 인원 중 50∼60%가 옌볜동포라서 그들이 한꺼번에 빠지면 대부분 현장이 손을 놓아야 한다”며 “최근 합법적 신분을 얻은 이들이 더욱 이동이 잦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내년 3월 이후다.

불법체류자로 자진 신고한 외국인 25만6000여명 중 제조업 종사자는 13만여명. 정부는 현재 8만명인 외국인 산업연수생 한도를 13만명으로 늘려 부족한 인력을 채운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연수생 한도 확대가 단순한 숫자놀음일 뿐 인력난 해소에는 전혀 도움이 안된다고 주장한다. 산업연수생이 현장에 투입돼 일정 수준의 숙련도를 확보하기까지 몇 개월은 걸리기 때문. 그나마 연수생 충원 시기가 불법체류자 출국 시기와 딱 맞아떨어지기도 어렵다.

이에 따라 정부는 산업연수생 3만명을 연말까지 조기 입국시킨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인권단체들이 ‘고용허가제’ 도입을 주장하며 반발하자 구체적인 일정을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상당수 불법체류자들이 내년 3월 이후에도 한국에 잔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상당수 외국인 근로자들은 자국보다 훨씬 임금 수준이 높은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중소기업의 인력 공백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불법체류자 자진신고를 받고 ‘한시적 합법화’까지 한 마당에 어떤 식으로든 본격적 단속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외국인 근로자 월급여 수준(단위:원)/font>
구분외국인 근로자내국인 근로자내국인 근로자 대비 급여수준
산업연수생1년차931,6501,213,00076.8%
2년차1,007,0701,213,00083.0%
연수취업자1,070,8201,213,00088.3%
불법체류자1,015,8001,213,00083.7%

(2002년 6월 기준, 숙식비와 연수취업기간 확대(1년->2년)를 감안하면 실질 외국인 근로자 임금은 소폭 상승)

(자료:중소기업연구원)

고기정기자 koh@donga.com 안산〓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부처 ‘외국인 근로자’ 관할싸움만▼

중소기업 인력난이 이처럼 심각한 상황인데도 정작 정부는 부처간 이해관계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외국인근로자 처리 문제와 관련해 가장 날카롭게 대립하는 부분은 산업연수제와 고용허가제.

산업연수제는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1년 연수를 거친 후 2년간 취업하도록 한 제도로 1993년부터 도입됐다.

문제는 산업연수생들이 구조적으로 저임금에 시달릴 수밖에 없고 ‘인권문제’ 논란도 겹치면서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 이에 따라 노동부는 국내 근로자와 동등한 근로여건이 보장되는 고용허가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산업자원부는 일부 기업의 인권침해 사례는 합법적 산업연수생이 아닌 불법취업자에 대한 것이라며 현행 산업연수제를 고수할 것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 같은 논쟁의 이면을 들춰보면 부처간 ‘밥그릇 싸움’에 지나지 않을 뿐 정작 중소기업의 인력난 해소와는 무관하다는 게 관련업계의 분석이다.

노동부측은 “산자부가 산업연수제를 주장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외국인연수생을 데려올 때 해외송출기관으로부터 받는 공탁금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공탁금은 이행보증금 형식으로 연수생 1인당 300달러씩 받는 돈이다. 연수생이 사업장을 이탈하거나 연수기간을 채우지 못하면 보증금은 모두 산자부 산하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중기협) 차지가 된다. 지난해 적립된 보증금은 42억원에 이른다.

이에 대해 산자부측은 “보증금은 연수생 교육과 건강검진 등에 쓰인다”며 “노동부가 이를 문제삼는 건 외국인근로자 관리 권한을 넘겨받기 위한 의도”라고 꼬집었다. 겉으로는 인권보장을 위해 고용허가제를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노동부의 권한 강화를 노리고 있다는 것.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정부 관련부처가 인력확충은 뒷전인 채 외국인근로자를 둘러싼 법적 형식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달 17일 정부가 내놓은 외국인력제도 개선방안도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 불법취업자들을 내년 말까지 모두 출국시키는 대신 산업연수생 정원을 일부 확대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인력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은 빠져 있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확충 시급” “너무 늘리면 시장 잠식”▼

◆외국인력 수급 전문가진단=중소기업 인력난은 국내 소득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허드렛일을 하기 싫어하는 데서 비롯되는 구조적인 문제다.

LG경제연구원 이우성 책임연구원은 “선진국에서도 볼 수 있듯 3D업종을 중심으로 한 인력부족 현상은 피할 수 없는 대세”라며 “외국인력을 대폭 확충하기보다는 장기적인 사회 전체의 틀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독일은 3D업종의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를 유입시켰지만 장기 대책이 마련되지 않아 실패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장기 체류자와 출국 거부 등으로 외국인 근로자들이 사회 문제로 대두된 것.

여기에 외국인들이 서비스 업종으로까지 진출할 경우 내국인들의 고용시장을 잠식하는 부작용은 더 커진다.

이 책임연구원은 “3D업종 해외 이전 등 산업구조 고도화를 통해 해결해야 할 숙제인 만큼 단기적인 인력난에 너무 매달릴 수는 없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당장 ‘발등의 불’로 떨어진 인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근로자를 빨리 늘려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숙명여대 경제학과 김장호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외국인 근로자 정원을 늘리되 관리를 강화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며 “경제 상황에 따라 수급을 조절할 수 있는 외국인 인력풀(pool)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또 “스위스의 경우 전체 제조업 근로자의 20%가 외국인”이라며 “이들은 대부분 산업구조상 하위업종에 분포돼 있다”고 덧붙였다.

관리 방안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외국인을 내국인 근로자와 동등하게 처우하는 고용허가제는 불법취업자를 줄일 수 있고 관리하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임금을 올려야 하므로 중소기업들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현행 산업연수제는 업체들이 정원 확대를 요구할 정도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연수 후 취업기간이 짧고 임금 수준도 낮아 불법취업자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한편 일부 경제전문가와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우리 사회 일각에서 외국인 근로자 문제를 너무 ‘인권’의 시각에서만 접근하다 보니 자주 경제논리를 무시한다”고 꼬집는다. 실제로 일본이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외국인 근로자 고용 합법화에 소극적인 정책을 고집하는 것도 명분보다 실리를 중시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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